[경북여성 항일투쟁기③] 영화 '암살'의 모델 남자현 지사

기사등록 2021/11/13 07:00:00 최종수정 2021/11/13 07:16:41

남편 김영주, 결혼 5년만에 항일의병 활동하다가 전사

만주 망명 초기엔 여성계몽활동 등 교육사업 적극 활동

만주망명 8년 이후엔 아들에 생계 맡기고 직접 독립투쟁

남 지사의 첫 무장활동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시도

1933년 무토 주만일본대사 암살 시도 중 일본경찰에 체포

6개월간 혹형 받다가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같은해 사망

남 지사의 활약상은 2015년 개봉 영화 '암살' 소재로 활용

남자현 지사 초상화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여성들은 한인 사회 안정 등 후방기지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남성들과 함께 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어 활약한 여성들도 존재했다.

남자현(南慈賢, 1872~1933) 지사가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13일 한국국학진흥원 등에 따르면 남자현 지사는 경북 영양 출신으로 부친은 남정한(南珽漢)이다.

의성김씨 김영주(金永周, 1871~1896)와 혼인했다.

남 지사가 주체적으로 항일 무장투쟁에 뛰어든 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 함께 가족의 비극적인 환경이 함께 작용했다.

결혼하고 5년 밖에 안 된 1896년, 항일 의병활동을 전개하던 남편 김영주가 전사하는 비극을 맞는다.

남편의 죽음 이후 생계를 맡아 시부모를 봉양하고 3대 유복자인 아들 김성삼(金星三)을 길러야 했다.

1910년에는 원수였던 일본에 의해 국가가 강점되는 비극을 경험했다.

남자현 지사 생가터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경북지역 유수한 인사들이 만주로 망명해 독립투쟁을 준비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15년 시어머니마저 별세하자 만주로 망명을 결심하게 된다.

1917년 아들 김성삼을 우선 만주로 보내 기반을 닦게 했고,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이후 곧바로 만주로 망명을 떠났다.

만주 망명 이후 생계를 아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직접 독립투쟁에 뛰어들었다.

남 지사는 경북지역 출신인사들이 다수 운집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망명 초기 만주에서 수행한 주요 역할은 교육활동이다.

남 지사에 대해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서 부친인 남정한이 일찍부터 글을 가르쳤는데 7세에 한글을, 8세에 한문을 터득했다. 12세에 소학과 대학을 읽었고, 14세에 사서를 독파하고 한시(漢詩)를 지었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정의부로 옮겨 활동한 시기에도 교육사업에 적극적이었고, 특히 여성계몽에 앞장섰다.

남자현 지사의 복원된 생가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청천(池靑天) 장군의 딸인 지복영 선생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남자현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중략) 우리의 이 비참한 망국의 설움과 멍에를 벗으려면 여자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해야하고 글도 배워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다녔다"고 했다.

1928년에는 길림교당에서 '김림여자교육회 부흥'을 위한 총회를 개최하는 등 여성 교육에 열정을 쏟기도 했다.

남 지사는 만주망명 이후 8년이 지난 1927년대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무장항일투쟁을 위한 역할에 헌신했다.

이 시기 공식적으로 남자현의 이름이 만주지역에서 등장했다.

바로 '조선혁명자후원회' 중앙위원이라는 공식 직함이 생긴 것이다.

이 모임은 혁명가와 가족을 후원하기 위한 국제적 조직이다.

남 지사의 무장활동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 시도와 관련된 사건이다.

1927년 암살 계획을 수립한 이후 권총 한 자루와 탄환을 받아 서울로 잠입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남자현 지사 항일순국비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28년 길림에서 김동삼(金東三)·안창호(安昌浩) 선생 등 47명이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석방운동에 적극 나선다.

1931년에는 김동삼 선생이 하얼빈에서 붙잡히자 그를 탈출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1932년 국제연맹 리튼조사단이 하얼빈을 방문하자 흰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써 조사단에 보내는 등 조선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1933년 이규동 선생 등과 함께 주만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걸인노파 차림으로 하얼빈 교외를 지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남 지사는 단식투쟁 끝에 보석으로 석방됐지만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라는 말을 남기고 같은해 하얼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남 지사의 이러한 적극적인 항일 무장투쟁 모습은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만주로 망명한 이후 교육활동과 같은 후방의 지원 업무에 매진했던 남 지사는 1927년을 기점으로 보다 본격적인 무장 투쟁에 뛰어들게 됐다"며 "총독 암살 시도 이후 꾸준히 독립활동을 전개한 남자현 지사의 모습에서 이 시기 경북 여성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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