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에서 유화가로 변신
청회색으로 담아낸 '새벽' 몰두
2년만에 신작전...노화랑서 10일 개막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사람은 매일 깨어나고 죽는다. '새벽'은 그렇게 온다. 청회색빛을 머금고…
"김포 작업실에 앉아 있으면 여백을 생각하게 된다. 평야가 펼쳐지고, 한강 하류의 넉넉함이 있다. 비어있음이 좋고, 한적한 공간이 좋다…정적이고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여기에 커다란 여백을 주어 더 허전하고 비어있는 공간을 표현한다. 그 공간과 더불어 어쩌면 고독함을 넘어 자유로운 사유를 표현하고 싶다."
'새벽 작가' 강승희 유화전이 10일부터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열린다.
서정적인 동판화 작가로 알려진 작가는 2019년 노화랑에서 첫 번째 유화전을 선보인 이후 '판화 작가'에서 '유화 작가'로 완전 변신했다.
2년만에 신작을 전시하는 이번 작품은 유화물감으로 수없이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해서 나왔다. 김포 작업실에서 밤에서 새벽까지 캔버스와 유화로 씨름했다.
젊어서부터 ‘새벽’이라는 시간에 매달렸다. "적막하고 심심하면서 어둡지도 밝지도 않는 새벽이 감성 시간으로 이끌었다. 교수라는 직업이 작업 시간을 축내고 있었지만, 나머지 모든 시간을 캔버스에 쏟았다."
그렇게 밤과 낮이 교차하는 새벽을 절묘하게 캔버스에 옮겨 놓았다. "어느덧 60년이 넘는 내 삶에서 가장 치열해서 오히려 처절한 감정까지 들 정도로 유화물감과 씨름했다"는 강승희는 자신의 작품을 "눈물겹게 얻어낸 서정성"이라고 했다.
미술평론가 고충완도 "작가에게 매체를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고 선택"이라며 치열한 작업에 동의했다. "판화에서 일군 그만의 정서, 풍경의 서정성 혹은 시간의 감성이라고 해도 좋을 어떤 상징적인 감성을 형상화하는데 유화라는 매체에 정진하고 있다. 이미 그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남들은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은 몰라 여전히 캔버스에 몰입하는 작가가 강승희이다."
제주가 고향인 강승희는 홍익대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하고 판화를 부전공했다. 현재 추계예술대학에서 판화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판화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91년 제9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 같은 해에 일본 ‘와카야마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2등, 2000년에 제1회 칭다오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판화가다.
극도의 세밀함으로 수묵화의 먹이 퍼지는 효과를 판화 제작기법으로 표현해낸 작품은 중국,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국내에서는 최고의 판화작가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중국 ‘중경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적막하고 심심한, 허허롭고 고요한, 눈에 띄는 변화도 없고 별반 시선을 끌 만한 것도 없는 풍경이 여백을 떠올리게 해서 좋고 고독해서 좋다. 자연스럽게 한강 하구를 걷는 것이, 논밭 사잇길을 걷는 것이 작가의 산책코스가 되었다. 그대로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것 같고, 작가의 그림 속에 들어온 것도 같다."(미술평론가 고충환)
새벽의 어스름한 대기와 고요한 새벽의 기운. 막 깨어나는 순간이며, 아직 깨어나지는 않은 미몽의 시간, 그 새벽에 강승희의 '새벽'이 매번 새 삶을 경배하고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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