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고삐 풀린' 주민숙원사업비 또 편성하나

기사등록 2021/09/23 11:36:46

의원 재량 따라 '쌈짓돈' 지출…행안부·감사원 폐지 권고

계약 비위 연루 수사 결과까지…3000만 원씩 편성 추진

"눈 먼 돈 전락, 없애야" VS "민원 해소 순기능은 남겨야"

[광주=뉴시스] 광주 북구의회 본회의 전경. (사진=뉴시스DB) 2021.04.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광주 북구가 각 사업 부서 예산에서 일정 금액을 구 의원 개인 몫으로 정기 배정해 자유롭게 지출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 숙원비, 이른바 '의원 재량사업비' 편성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편성·집행이 불투명한 선심성·음성적 예산으로 전락해 행정안전부 폐지 권고가 있었고, 의원 계약 비위 연루에 악용됐다는 수사 결과까지 나오면서 내부 검토에 들어갔다.

23일 광주 북구 등에 따르면, 구는 오는 12월 구 의회 회기 중 상정할 '2022년도 본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다.

기안 단계지만, 북구는 '관례대로' 8대 의원 1명 당 주민 숙원사업비 명목의 3000만 원을 각 사업 부서에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원·재량·포괄 사업비로도 불리우는 주민숙원사업비는 지자체 회계에 따로 남지 않고 실·국 일반 사업비 안에 일정 금액이 포함되는 예산이다. 의원들은 배정 한도 내 각 사업부서에 나눠진 사업비를 재량껏 쓴다.

실제로 최근엔 주민 숙원 사업비 명목의 경로당 안마의자 지원의 구체적 내역이 공개돼 논란이 재점화됐다.

주무 부서가 관련 조례에 따라 경로당 비품 지원·시설 개선에 드는 예산을 '민간자본사업보조금' 명목으로 지원했지만, 실제로는 의원들이 '지역 민원'을 근거로 자기 몫의 '주민 숙원 사업비'에서 보조금을 지출토록 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의원들이 업체 선정에도 구체적으로 관여하며 같은 안마 의자 기종인데도, 납품 단가 차이가 발생하면서 '의원 쌈짓돈'을 둘러싼 온갖 잡음을 낳았다.

정확한 소요 예측에 따른 구매가 아니고 공공비품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납품 과정조차 불투명해 혈세 낭비 의혹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해당 예산은 말 그대로 '의원 재량'에 따라 쓰인다. 실제로 안마 의자 외에도 게이트볼 장비, 반신욕기 등을 구입하는 데에도 썼다. 의원들은 지역구 또는 자신의 아파트 놀이터·체육시설 개보수와 환경 정비에도 '생색내기'로 예산을 지출했다.

행정안전부와 감사원도 예산 쓰임새·범위·기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의원 재량으로 쓰이는 '포괄사업비'가 예산 오·남용을 불러온다는 점을 우려, 편성 폐지를 권고해왔다.

그러나 이름만 주민 숙원 사업비로 바꿔 여전히 '표심 얻기'에 쓰이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구 의원의 편성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투명한 편성·집행 절차를 거친 '쌈짓돈' 성격의 예산을 지출의 합목적성, 형평성, 공익성을 따지지 않은 채 낭비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광주=뉴시스] 광주 북구청·북구의회 청사. (사진=뉴시스DB) 2020.09.13. sdhdream@newsis.com


더욱이 지난 17일에는 주민 숙원 사업비로 편성된 예산을 통해 자신의 이권까지 챙긴 구의원이 불구속 송치되면서 폐지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기대서 의원을 불구속 입건, 검찰에 송치했다.

기 의원은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북구청 발주 시설 개선·비품 구입 등 각종 사업에 개입, 자신이 지인에 경영권을 넘겨준 업체 등 2곳이 북구청 수의계약 수십여 건을 따낼 수 있게 도운 혐의다.

경찰 조사 결과 기 의원은 자신 명의로 배정된 '주민 숙원 사업비'에서 집행하는 특정 사업을 중심으로 주로 계약 입찰 비위를 저질러 이권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기 의원은 수사가 시작되자, 올 한해 주민 숙원 사업비(6000만 원) 편성을 고사했다. 기 의원을 비롯한 2명을 제외한 북구의원 18명은 모두 자신 몫으로 사업비를 챙겼다.

조선익 참여자치21 공동대표는 "의원들이 선심성으로 '포괄사업비'를 주민 숙업 사업비로 이름만 바꿔 불투명하게 집행,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편성·지출에 대한 세부 내역이 없기 때문에 의정 성과를 홍보하는 데 쓰이는 돈으로 전락했다"며 "어떤 돈도 소요 예측, 지출 결과에 대한 평가가 없이 쓰이지 않는다. 하물며 세금인 만큼,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광주 한 자치구 관계자는 "현실 정치에서 표심이 절박한 의원들로선 지역 민원을 외면하기 어렵다. 전혀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다"며 "민원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곧바로 예산 집행에 반영하므로 순기능도 있다. 다만 납품·공급 업체 선정 등 절차에선 투명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북구의회 한 의원은 "안마 의자 지출 관련 논란이 불거지면서 의회가 공식적으로 사업비 편성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며 "의원 개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구 관계자는 "주민 숙원 사업비를 포함한 모든 예산 편성안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긴급한 민원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편성 취지가 타당하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 "다만 최근 사업비 집행을 둘러싼 논란과 위법성 소지 등을 감안해 편성 여부까지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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