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
한강 작가는 7일 출간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5년 만에 책을 내다보니 이런 출간 후 행사가 너무 오랜만이다. 더구나 팬데믹 시국에 이렇게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인사 드려서 어색하고 낯설기도 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을 그린 작품으로 2019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계간 '문학동네'에 전반부를 연재하면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그 뒤 1년여에 걸쳐 후반부를 집필하고 또 전체를 공들여 다듬는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소설은 주인공 경하가 꾸었던 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작가는 "첫 두 페이지는 2014년 6월말 정도에 쓰게 됐다. 당시 5월 광주를 그린 '소년이 온다' 발표 후 악몽을 계속 꾸었는데 6월말에 이 꿈을 꿨다"며 "눈 내리는 벌판을 걷고 있었고 벌판 끝에 검은 통나무 수천, 수만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 뒤에 봉분들이 있어 무덤이라는 걸 알았다"고 회상했다.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운동화에 물이 밟혀서 돌아보니 지평선인줄 알았던 곳이 바다였어요. 봉분 아래 뼈들이 쓸려가 버렸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죠. 밀물이 닿기 전 남은 뼈들을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도구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어찌할줄 모르다 깨어났어요. 이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했죠. 뭔지 잘 모르지만 이게 언젠가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았어요."
그는 "1990년대 후반 제주 바닷가에서 월세방을 얻어서 3,4개월 정도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방을 내어준 주인집 할머니와 골목을 걷다 할머니가 멈춰서서 이 담이 4·3때 사람들이 총을 맞아 죽은 곳이라고 말해줬다"며 "눈부시게 청명한 오전이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 일이 다가왔다. 내 마음 속 자라난 꿈과 할머니와 골목 걸었던 순간이 만나면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설에서는 동시에 두 곳이 존재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의 삶이 이렇게 고립된 것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코로나 시국 사회적 거리두기도 그렇고, 홀로 있어야 하고, 같이 있어도 마스크를 쓰고 포옹이나 악수를 하지 못하는. 지금도 그런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 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한 작가는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이기도, 제주 4·3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지만 그중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을 고르고 싶다"며 "소설을 쓰면서 그 상태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모든 소설을 쓸 때는 소설이 요구하는 마음의 상태가 있어요. 이 소설이 제게 언제나 요구했던 상태는 '지극한 사랑'이라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저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 자체가 두 개의 삶을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삶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살게 하는 것이죠."
처음부터 제주 4·3 이야기를 쓸 생각은 아니었다. 한 작가는 "소설을 쓸 때 제가 의도를 갖고 쓸 때도 있지만 어떤 모티브, 장면이 떠올라서 이게 어떤 소설이 될까 스스로 알고 싶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 문득 '이게 이런 거였구나'를 알게 되는 이상한 순간이 있다"며 "온전히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 이상한 각성의 순간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소설의 주인공은 경하인 것 같았다가, 인선인 것 같았다가, 결국 정심이 된다. 그는 "경하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경하와 인선이 맺어진 질, 인선과 어머니가 맺어진 실, 또 죽은 사람들과 연결된 실, 다 하나로 연결되고 전류가 통하며 생명이 도는 그런 걸 상상했다"며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걸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세 인물을 등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경하와 실제 작가가 많이 겹쳐보인다는 지적에는 "경하의 모습이 다 내 얘기는 아니지만 '소년이 온다' 이후 악몽을 사실"이라며 "어떤 소설이든 쓰는 과정 동안 쓰는 사람을 변형시킨다. 저도 변형됐고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이 온다' 이후 꾸는 악몽이나 제가 갖게 된 고민은 평생을 갖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이상하게도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됐죠. '소년이 온다'에서는 제 삶에 악몽, 죽음이 깊이 제 안에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은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을 쓰는 건 고통도 있었지만 저를 구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작품 속 '새'와 '눈'은 남다른 역할을 한다. 그는 "새는 어떻게든지 살리고 싶은, 모든 걸 걸고라도 구하고 싶은 그런 어떤 것"이라며 "눈은 죽음과 삶 사이, 인간의 어둠과 빛 사이를 가득 채우는 그런 것"이라고 전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이 소설을 쓰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써야 할 소설이 지금 3,4편 정도 밀려있다"며 "원래 이번 소설을 '눈'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했는데 독립해서 나왔다. 다시 세 번째 이야기를 써서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는지, 사랑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 아닌지 이즈음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정심의 마음을 매 순간 들여다보았고, 그 사랑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그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가장 기쁜 일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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