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선 시대에 '가짜 남편' 사건이 있었다. 대구 사족 유연이 1558년 가출하면서 벌어지는 이 사건은 6명의 무고한 죽음을 낳으면서 당대의 화제가 됐다. 이를 다룬 이항복의 ‘유연전’은 국문학계에서 나름 관심거리가 됐다.
이 책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푸른역사)은 꼼꼼한 사료 읽기를 바탕으로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면서 당대의 기록과 제도 대신 인간의 욕망을 축으로 문학이 은폐’한 역사를 보여준다.
1558년 유유가 가출하고 4년 뒤 채응규라는 사람이 유유를 자칭하고 나타났다. 1564년 유유의 동생 유연이 그가 가짜임을 눈치 채고 그를 대구부에 고소했다. 진위를 가리던 중 채응규가 자취를 감춘다.
유유의 아내 백씨는 적장자 지위, 봉사권, 토지를 빼앗으려고 유연이 형(채응규)을 살해했다고 고소한다. 유연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거짓 자백을 했고 사형에 처해진다.
15년 뒤 진짜 유유가 나타나 재조사가 시작됐고 채응규는 체포된다. 채응규는 서울로 이송되던 도중 자살하자 이번엔 유유 형제의 자부인 이제가 처가 재산을 노리고 채응규를 교사한 범인으로 지목된다. 결국 이제는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21년 만에 마무리된다.
조선 풍속사, 사회사 등 다양한 저서를 펴내 학문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얻은 한문학자인 저자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이번 책에서도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신선한 시각과 합리적 추론을 통해 조선 사회의 단면을 흥미롭게 보여줘 추리소설을 방불케 한다.
저자는 이 같은 내용의 '유연전'과 이와 상충되는 권득기의 '이생송원록'을 교차 분석하여 문학작품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며 이제의 누명을 벗기고 백씨 부인이 이 사기극의 진정한 기획자임을 드러낸다.
채응규가 진짜 남편임을 주장하는 확실한 근거인 유유 부부의 첫날밤 일과 백씨 부인의 신체 비밀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등을 들어 백씨 부인을 지목한다.
이제가 평소 재물에 담박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을 제시하고 당대 법제를 들어 사기극이 성공했더라도 이제가 처가 재산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다는 점도 설명한다. 즉, 이제에게는 범행 동기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사건의 단초가 되는 유유의 가출도 성적 문제에 기인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뼈대가 되는 이항복과 권득기의 글을 두고 먼저 집필 배경을 짚어서 이 사건의 이해를 돕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