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서 특별기여자 390명 이송 성공
분당 샘물교회 피랍 사건 당시 2명 피살
샘물교회 당시 탈레반 협상서 일부 실책
이번엔 美 사전 협력으로 변수 줄여 성공
외교부는 미군과의 협조를 통해 이들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을 카불공항 안으로 이동시켰다. 국방부는 공군 KC-330 공중급유기 1대와 C-130J 전술수송기 2대를 보내 이들을 무사히 한국으로 이송했다.
한국의 작전 성공은 일본 정부의 실패와 대조를 이뤘다. 일본 정부는 아프간에 남은 자국민과 현지 직원을 대피시키려 자위대 수송기 3대를 보냈지만 극히 일부만 데려오는 등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 외교안보 당국의 활약에 호평이 이어지면서 정부가 2007년 분당 샘물교회 사건 당시 실수를 만회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 나온다.
분당 샘물교회 사건은 14년 전인 2007년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분당 샘물교회 청년회 소속 봉사단 20명은 해외 봉사활동을 위해 열흘 일정으로 7월14일 아프간 카불에 도착했다. 이들은 7월15~18일 마자리 샤리프 지역에서 의료봉사와 어린이 봉사활동을 했다.
7월19일 샘물교회 봉사단 20명과 아프간 현지에서 합류한 안내자 3명 등 23명(남자 7명, 여자 16명)이 전세버스를 빌려 카불에서 남부 칸다하르로 가던 중 사건이 벌어졌다. 이들은 가즈니주 카라바크 인근 자불-칸다하르 고속도로 상에서 탈레반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다.
납치 소식은 7월20일 로이터통신을 통해 국내에 전해졌다. 7월20일 탈레반 대변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7월21일 낮 12시까지 아프간 주둔 한국군이 철군하지 않을 경우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외교통상부는 7월20일 국외테러사건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7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은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전화해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CNN을 통해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아프간에서 철군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시킨 뒤 카불 현지에 협상단을 급파했다.
협상단은 7월22일 카불에 도착해 아프간 정부, 부족 원로, 종교 지도자들에게 직·간접적 접촉과 중재를 요청했다. 탈레반은 7월23일 한국 정부와 직접 협상을 요구했다. 탈레반은 그러면서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 수를 23명에서 가즈니주에 수감된 탈레반 수감자 55명 전원으로 늘렸다.
한국 정부는 피랍자 23명 중 여성 18명을 우선 석방시키자고 제안했다. 탈레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7월25일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 탈레반은 하루 안에 수감자 8명이 석방되지 않으면 다른 인질도 모두 살해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탈레반이 협상시한을 수시로 변경하고 인질·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7월31일 심성민씨가 살해됐다. 탈레반은 수감자 석방에 대한 긍정적인 답이 없을 경우 나머지 인질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 위협했다. 또 한국과 미국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면 인질을 살해할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과의 대면접촉이 이뤄진 후에야 해결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8월3일 아프간 주재 한국 대사와 탈레반 측은 직접협상 장소를 정하기 위해 통화했다.
피랍사태 23일째를 맞은 8월10일 탈레반 측 대표단과 한국 대면접촉팀이 가즈니주 적신월사(ICRC·이슬람권 적십자) 사무실에서 첫 대면협상을 가졌다. 탈레반 대표는 한국인 인질 8명과 같은 수의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조건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국 정부 대표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권한 밖의 일이라며 탈레반에 인도주의적 차원의 석방을 요청했다.
8월16일 한국·탈레반 대표는 가즈니에서 3차 대면협상을 재개했다. 탈레반이 8월 중순부터 인질·수감자 맞교환 조건을 철회할 의사를 내비쳤다.
8월27일 한국 정부가 아프간에 파병된 동의·다산부대를 3개월 연장 주둔 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질 협상은 본격적으로 진척됐다.
마침내 8월28일 한국·탈레반 대표는 4차 대면협상을 갖고 인질 19명 전원 석방에 합의했다. 한국·탈레반 협상팀은 ▲아프간 내 한국군 연내 철수 ▲아프가니스탄 내 비정부기구 활동 한국인들 8월 내 철수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 활동 금지 ▲한국인 철수과정의 안전 보장 ▲탈레반 수감자 석방 요구 철회 등 5개 조항에 합의했다.
당시 협상에서 외교안보 당국은 여러 실책을 범했다. 당국은 철군 계획을 너무 일찍 밝혀 협상에 활용할 지렛대를 일찌감치 소진했다. 또 직접 협상과 석방금 지급 의혹이라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향후 한국인이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힐 수 있는 위험도를 높인 측면이 있다.
윤태영 경남대 경호보안학과 교수는 '한국의 국외인질테러 대응 체계와 활동 평가: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사건 직후 탈레반의 철군 요구가 있자마자 기존의 철군계획이지만 7월21일 이를 조급하게 발표함으로써 인질석방에 활용할 수 있는 협상카드를 소진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또 "한국 정부는 테러집단과의 직접 협상 불가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파기하고 직접 대면협상에 나서 인질을 석방시켰다"며 "향후 국외테러 발생 시 한국 정부의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했고 한국인에 대한 인질테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가정보원장과 국정원 협상요원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피랍사건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07년 8월6일 미국 부시 대통령과 아프간 카르자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탈레반에 대한 양보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프간 정부가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을 거부하고 미국도 이를 동조하자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탈레반을 설득할 묘안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외교안보 당국은 이번 아프간 조력자 이송 작전에서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했다. 샘물교회 사건 때 비협조적이었던 미국은 이번에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프간 조력자들을 현지 카불 공항에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카타르로 철수했던 주아프간 대사관 직원들이 선발대로서 카불에 조기에 투입되는 것이 중요했다. 미군은 군용기를 통해 대사관 직원 3명과 주UAE 무관 1명을 카불로 긴급 이송시켰다.
미군은 한국 군 수송기가 카불 공항에 이착륙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 군 수송기가 카불 공항을 출입하려면 미군 중부사령부의 사전비행승인(PPR)이 필수적이었다. 미군은 시시각각 변하는 카불 공항 상황에 따라 우리측의 승인 요청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미군은 아프간 조력자들의 카불 공항 진입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군은 탈레반과 직접 협상해 조력자들이 버스를 이용해 공항 안으로 진입하도록 해줬다. 아울러 미군은 수만명이 운집한 카불 공항 내 대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조력자들 틈에 끼여 한국군 수송기 탑승을 시도하던 신원미상자들을 막았다.
국방부는 작전 성공 후 "이번 미라클 작전 성공은 동맹국인 미국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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