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유해 78년 만 귀환…文대통령 영접(종합)

기사등록 2021/08/15 21:02:31 최종수정 2021/08/17 18:00:31

홍 장군 유해, 카자흐스탄 떠난지 6시간30분 안착

문 대통령, 독립국 영웅의 희생에 극진한 예 갖춰

17일 대국민 추모제 거쳐 18일 대전현충원 안장

[서울=뉴시스] 전진환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5일 오후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열린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분향 및 묵념하고 있다.  2021.08.1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항일무장 독립투쟁 후 이역만리(異域萬里) 카자흐스탄 땅에서 잠들었던 홍범도(1868~1943) 장군이 서거 78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홍 장군의 유해를 직접 영접하는 것으로 독립군 영웅의 희생에 대한 극진한 예를 갖췄다.

홍 장군의 유해를 모신 공군 다목적 특별수송기 시그너스(KC-330)는 15일 오후 7시30분께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에 안착했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을 떠난지 6시간30분 여만이었다. 약 1시간 여 준비 과정을 거쳐 오후 8시50분께 봉환식이 전국에 생중계 됐다.



앞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을 단장으로 한 특별사절단은 지난 14일 홍 장군이 안장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도착해 현지 추모식을 거행했다.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의원, 독립군 역할을 열연한 배우 조진웅씨가 특사단으로 함께 했다.

현지 고려인협회 주관 제례 의식 따라 묘역에 안장된 홍 장군의 유해를 인수한 뒤, 현지 병원에서 임시 안치와 정식입관 과정을 거쳐 봉환길에 올랐다. 홍 장군을 떠나보내는 현지 고려인에 예우를 갖추기 위해 카자흐스탄 상공을 3회 선회한 후 고국으로 출발했다.
F-35A 등 공군 보우 모든 전투기 투입…특별수송기 호위 비행 예우
홍 장군 유해를 모신 특별수송기는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한 이후 공군 전투기 6대의 호위 비행을 받으며 서울공항에 안착했다. F-35A, F-15K, KF-16D, F-5K, F-4E, FA-50 등 현재 운용중인 모든 공군 전투기종을 투입하는 것으로 고국으로 돌아오는 홍 장군에 최고 예우를 갖췄다.

서울공항에는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서훈 국가안보실장,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서욱 국방부 장관이 직접 영접했다. 광복군으로 항일운동에 참여한 김영관 애국지사도 함께 했다.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헌화·묵념으로 78년 만에 고국 품에 안긴 독립군 영웅의 희생 정신을 기렸다.

공항에서 진행된 유해 봉환식은 국방부 의장대와 군악대의 특별 독창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에 맞춰 진행됐다. 스코트어로 '오랜 옛날부터'라는 의미로 석별의 정을 담은 스코틀랜드 민요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애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공식 봉환식을 모두 마친 뒤 홍 장군의 유해는 곧바로 대전현충원으로 이동했다. 보훈처는 현충탑에 마련된 임시안치소에서 17일까지 온·오프라인을 통한 대국민 추모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보훈처 홈페이지에 별도의 추모 페이지를 마련, 온라인 추모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대전현충원으로 이동…대국민 온·오프 추모 거쳐 18일 안장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16~17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성사됐다. 2019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합의했던 유해 봉환 약속이 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양국 정부의 실무 협의, 현지 고려인 사회와의 논의 끝에 봉환이 결정됐다.

당초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이던 지난해에 맞춰 추진했지만 한·카자흐스탄 양측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으로 인해 1년 가까이 연기됐었다. 광복절 76주년을 계기로 성사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 성과물로 봉환이 마무리 됐다.

문 대통령은 오는 17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홍 장군 유해봉환 성사에 대한 사의를 표명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두 나라 실질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홍범도 장군은 1920년 6월 최진동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 골짜기에서 추격 일본군 157명을 섬멸시키며 항일무장 독립투쟁 역사상 최초의 전면전 승리를 거뒀다. 봉오동 전투는 4개월 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 승리로 이어졌다.

홍 장군은 이듬해인 1921년 연해주로 거처를 옮긴 홍 장군은 '만주 사변'을 계기로 소련군 일원이 됐다. 1923년 군복을 벗고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을 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크즐오즈다 지역으로 밀려났다.

평양 출신인 홍 장군은 김일성의 항일 행적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북측에서 조차 주목받지 못했고, 반공을 이유로 남측에서 조차 배척당한 경계인의 삶을 살다가 1943년 10월 크즐오르다에서 숨을 거뒀다. 사후 기준으로는 78년, 항일투쟁 기준으로는 10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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