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넘어북한]미국 앞에서 '분노조절' 잘하는 北…우리 상대론 도발위협?

기사등록 2021/08/14 12:00:00

美 겨냥한 김여정 담화, 격한 표현 자제

김영철 대남담화엔 "광기", "엄청난 안보위기"

미국과 남한 상대로 확연히 다른 태도 보여

[하노이=AP/뉴시스]지난 2019년 3월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촬영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모습. 2021.03.17.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이번 주 창넘어 북한의 소재는 북한의 '말 폭탄'입니다.

2주 전 남북 통신 연결에 대해 한미합동군사연습을 중단, 축소시키려는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살다 보면 불길한 예상이 맞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번 일도 결국 그런 결과가 됐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이 10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11일 잇달아 '담화'를 발표하면서 밝힌 북한의 입장은 명백합니다. 자신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합동군사연습을 강행했으니 미국과 우리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한 겁니다.

김여정과 김영철이 말한 대가는 다름 아닌 "더욱 엄중한 안보위협"입니다. 그 안보위협을 자신들이 만들어 내겠다고 강조했네요. 김여정은 "더욱 엄중한 안보위협에 직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고 김영철은 "얼마나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울=뉴시스]7월27일 오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서울사무실에서 지난해 6월 소통 채널 단절 이후 약 14개월 만에 우리 측 연락대표가 유선으로 북한 측과 통화하고 있다. 이날 복구된 남북 통신은 10일 이후 불통 상태다. (사진=통일부 제공 영상 갈무리) 2021.07.27
김여정의 담화는 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고 김영철의 담화는 우리만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두 담화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김여정 담화입니다. 주로 미국을 겨냥한 때문인지 표현을 절제한 분위기가 뚜렷합니다.

김여정은 '미국과 남조선의 '전쟁광기' 때문에 '한반도와 주변에 군사적 긴장과 충돌위험이 격발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미 정부가 떠들어대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란 저들의 침략적 본심을 가리기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북한이 '국가방위력을 줄기차게 키워온 것이 천만번 정당하였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겁니다.

핵심은 뒤에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자면 미국이 한국에 전개한 무력과 전쟁장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그러면서 선제타격능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선제타격능력은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그런 무기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습니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북한 노동신문은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모습을 나타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11축(양쪽 바퀴 22개)의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20.10.11.photo@newsis.com
김여정의 담화는 논리적(?)인 주장을 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핵무장은 미국 때문이고 그 미국이 한반도에서 나가지 않는 한 핵무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싶은 겁니다.

억지 주장을 강변하고 있기에 논리적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습니다만 자신들이 세운 논리에 따라 수미상관(首尾相關)한 주장을 펴려고 시도했다는 뜻으로 논리적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재미있는 건 '핵무장의 강화'라는 표현이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겁니다. ICBM이나 SLBM을 시험 발사하는 등의 행동을 할지 여부는 미지수로 남겨놓은 겁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미리 예고한 적이 없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김여정 담화문을 계기로 북한이 새로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없다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직접적인 안보 위협을 가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걸고 있습니다.

툭하면 상소리를 입에 담던 김여정이 이번 담화에선 상당히 절제된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과 이번 담화를 (김정은 총비서의) 위임을 받아서 발표했음을 밝혔다는 점이 북한이 미국을 향한 도발을 자제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근거입니다.

경험상 미국을 상대로는 북한이 '막가파식'으로 행동하진 않겠다는 걸 미국이 알아주길 기대하면서 담화문을 썼다는 느낌이 드네요.

김여정 담화문에는 감정이 실린 단어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과 남조선의 전쟁광기'라는 표현에서 쓴 '광기'와 '남조선 당국자들의 배신적 처사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문장에 담긴 '배신적'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만 전자에선 미국과 우리를 한데 묶어서 쓰고 있어서, 후자에선 '유감을 표한다'는 외교적 표현으로 뒷받침하고 있어서 감정을 실어서 쓴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비교적 '점잖을 떤' 김여정과는 대조적으로 김영철은 특유의 '막돼먹은' 어투를 거리낌 없이 드러냈습니다. 김영철의 담화에는 '광기', '한갖 말장난', '엄청난 안보위기',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 '똑바로 알게 해주겠다' 등 감정이 섞인 단어들이 여럿 담겨 있습니다.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11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인사를 보도했다. 사진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사진=노동신문 캡쳐) 2021.01.1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외모에서 풍기는 거만하면서 걸핏하면 심통부릴 것 같은 고압적인 느낌이 글투에서도 적나라하게 느껴집니다.

감정이 섞인 표현에 더해 우리를 깔아뭉개는 표현도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김여정이 지난 1일 담화문을 발표해 '분명한 선택의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남조선 당국의 잘못된 선택으로 스스로가 얼마나 엄청난 안보위기에 다가가고 있는가를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김여정은 미국에 대해 핵무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만 했는데 김영철은 우리를 상대로 '시시각각으로 느끼게 해주겠다'네요. 앞으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에 걸쳐서 대남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고 위협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천안함 폭파사건을 감행하고 개성공단을 폐쇄를 주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김여정의 배후에서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우리를 상대로 한 '패악질'들에 김영철의 직접 관여했음을 생각할 때 이번에도 설마 싶을 정도의 일을 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김영철이 남북관계에 최대의 걸림돌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평양=뉴시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훈 국정원장, 문재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2018.09.18. photo@newsis.com
갑자기 무슨 소리냐 싶을 생각을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전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건전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에 늘 합니다.

남이든 북이든 서로가 상대를 제거하거나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적어도 한 30년 내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수시로 힘을 얻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북한이, 북한에 우리가 생존을 위협하는 극도로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을 서로 갖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예전에는 남이나 북 모두 그런 경향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선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력이 북한의 몇십 배, 몇백 배에 달하게 되면서 저절로 그렇게 된 겁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체된 북한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김영철과 같은 사람이 북한의 대남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북한이 수시로 우리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표현이 원래 그렇다'는 거지요. 북한이 우리에게 가진 콤플렉스를 너그럽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여정이 미국을 상대하는 말과 김영철이 우리를 상대하는 말이 크게 다르다는 건 북한이 '원래 그렇다'는 말이 맞지 않는다는 걸 보여줍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남북관계도 기초부터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김여정이 미국을 향해 말하듯이 김영철도 우리에게 보다 '합리적(?)으로' 말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요?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