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대장은 1964년생으로 벌교중학교·매산고등학교를 거쳐 1983년 송원대학교 재학 중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과 인연을 맺었다. 광주대에 진학하고 나서는 공부와 등반을 병행하며 국외 원정에 뽑힐 정도로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1991년에는 북미 매킨리(6194m) 단독 경량 등반을 하다 손에 동상을 입어 조난을 당했다. 사고 16시간 만에 겨우 구조돼 10일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7차례의 수술 끝에 10개의 손가락을 모두 절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손가락을 잃은 이후 등반을 포기했지만 사고 6년 만에 할 수 있는 것은 등반 밖에 없다고 생각을 바꾸고 다시 고산지역 등반에 나섰다.
1997년 유럽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2006년 가셔브룸2(8035m), 2007년 에베레스트(8849m), 2012년 케이2(8611m), 2014년 마나슬루(8163m), 2018년 안나푸르나1봉(8091m) 등정에 성공했다.
이어 코로나19 여파로 한차례 미룬 마지막 봉우리 브로드피크 완등을 위해 지난달 1일 6명의 원정대를 구성하고 현지로 떠났다.
현지에서 2주 동안 고소적응을 마친 김 대장과 원정대는 지난 14일부터 본격적인 등반에 나섰으며 16일께 7200m 지점에 도착했다.
2009년에는 남극 빈슨매시프(4897m)등정에 성공하면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기록도 갖고 있다.
김 대장은 열손가락 대신 하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스키와 사이클 훈련을 하면서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9년 장애인스키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했다. 2013년 전국 장애인 동계대회에서 회전, 대회전, 콤바인 3관왕, 지난해에도 2관왕에 올랐다. 전국 장애인 도로 사이클 대회에도 꾸준히 참가해 순위권에 드는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광주장애인체육회 관계자는 "정상 등정에 성공하고 하산을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실종 소식이 동시에 전해져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장은 열손가락이 없어도 비장애인이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꼭 살아 돌아 올 것으로 믿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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