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 대표로 출전한 손기정, 역사적인 마라톤 금메달
IOC "손기정, 대한민국의 영웅" 소개하고 있으나 기록은 일본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손기정은 유니폼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손기정은 금메달 획득 직후 친구에게 엽서를 보냈다. 내용은 '슬푸다(슬프다)'였다. 손기정은 일장기가 부끄러웠고 서러웠다.
이에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유니폼에 일장기를 지우고 손기정의 금메달 소식을 보도했다.
일본은 두 신문사에게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손기정은 1945년 10월27일 자유 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 개회식 기수로 참여해 9년 전 누리기 못한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2002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고, 대한체육회는 2011년 손기정의 업적을 기리면서 그를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으로 헌액했다.
그러나 최근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주변에 위치한 일본 올림픽박물관에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을 일본인처럼 전시한 것이 드러났다.
박물관 내 역대 일본인 금메달리스트를 소개하는 코너에 손기정을 최상단에 올린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당시 한국을 식민지배하던 시절이었고, 손기정은 일본 국적으로 출전한 사실이 맞다고 지적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도 손기정을 일본 선수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OC 홈페이지에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Kitei Son(기테이 손·일본), 동메달은 Shoryu Nan(쇼류 난·일본)으로 적혀 있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모두 일본인으로 표시돼 있다.
한국의 계속된 요구로 일부에서는 'Sohn Kee-chung(손기정)'으로 바꾸고, 역사적 설명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아울러 당시 한국 언론이 1936년 올림픽 시상식에서 손기정의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지우고 보도한 사건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일장기 삭제 사건으로 8명이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고, 동아일보는 9개월간 정간 조치를 당한 사실도 소개했다.
손기정은 해방 후인 1948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국기를 들고 감격의 올림픽 무대를 다시 밟았고, 40년 후인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76세의 나이에 조국 대한민국에서 감격의 올림픽 성화 봉송하게된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손기정은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IOC의 조치가 없다면 손기정은 1936년부터 영면 후까지 일본인 선수로 남게 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sdm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