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하청 구조 속 공사비 삭감…無자격 업체 철거 강행
공법 지시 이원화·과다 살수·계획서 부실 의혹 등도 조사
전문기관 감정·국토부 조사 검토 뒤 붕괴 원인·경위 규명
다단계 하도급 관련 이면 계약, 공법 지시, 무자격 철거 의혹 등에 대한 실체를 규명해 참사의 전말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13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은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정비 4구역 내 붕괴 건축물(지하 1층·지상 5층) 철거 공정에 다단계 불법 하도급이 이뤄진 정황을 확인했다.
사업 시행자인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9월 서울 소재 ㈜한솔과 철거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후 ㈜한솔은 지난달 14일 '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등 건물 10채(붕괴 건물 포함)를 해체하겠다'며 동구에 허가를 신청했다.
실제 철거 공정엔 허가를 받은 ㈜한솔이 직접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건축물 철거는 현대산업개발(시행사)→㈜한솔(시공사)→백솔기업(불법 하청 시공사)의 단계별 하청이 이뤄졌다.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했으나, 백솔기업에 재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신생 업체인 백솔기업은 다른 업체에서 석면 해체 면허를 빌린 무자격 업체 것으로 알려져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다원이앤씨가 ㈜한솔과 이면 계약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들여다 보고 있다. 경찰은 지분을 나눈 것으로 추정되는 이면 계약 정황(다원이앤씨·㈜한솔)과 백솔기업 대표의 일부 계좌 내역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붕괴의 직접 원인인 건물 해체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던 정황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5층부터 아래로 해체(하향식)해야 하는 작업 절차를 어기고, 백솔기업은 1~2층을 먼저 허물었다.
이후 건물 뒤쪽에 쌓아둔 흙·폐건축 자재 더미 위(3~4층 높이)에서 굴삭기가 중간부터 해체 작업을 했다. 강도가 가장 낮은 왼쪽 벽을 허물어야 하는 계획을 지키지 않고 뒤쪽 벽을 부쉈다.
더욱이 이 같은 철거 공정(흔히 '집게'를 이용한 압쇄 방식)은 통째로 잔재물이 넘어질 위험이 높은 공법이지만, 백솔기업 대표이기도 한 굴삭기 기사는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굴삭기 기사는 '3층 높이로 쌓은 흙더미 위에 올랐지만 굴착기 팔이 건물 5층까지 닿지 않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뜯어내려 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철거 현장에서 허가 받은 계획서 상 작업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배경에 다솔이앤씨의 별도 공법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볼 예정이다.
또 붕괴 당일 공사장 비산 먼지를 줄이기 위해 평소보다 2배 많은 설비를 동원해 물을 뿌린 점도 수사 대상이다. 특히 현대산업개발 측이 철거 중 먼지 관련 민원을 줄이고자 '살수를 많이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진위를 확인 중이다.
경찰은 ▲부실한 건물 지지 ▲하중 등 구조안전성을 고려치 않은 철거 방식 ▲과도한 살수에 따른 흙더미 하중 증가 ▲굴삭기 건물 내 진입 등이 붕괴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기관 감정과 국토교통부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두루 검토해 정확한 붕괴 원인·경위를 규명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경찰은 현대산업개발, 한솔·백솔기업 관계자와 감리자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진 정황을 확인한 만큼, 정확히 어떤 지시 체계에 의해 철거가 이뤄졌는지 밝힐 예정이다"면서 "다수의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한 만큼 한 점 의혹을 남기지 않고 엄정 수사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일 오후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5층 건물이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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