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철거 업체→지역 업체' 재하청 구조
감독청 두달 전 '위험경고' 민원 무시, 경찰 7명 입건·수사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는 안전불감증, 재하도급, 날림 공사, 행정청의 감독 소홀 등이 결합해 빚어진 인재(人災)였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시행사와 철거 계약을 맺은 시공사가 다른 중장비 업체에 재하도급을 준 정황이 드러나 경찰이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철거 관련 책임자 7명 입건 날림 공사,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동구 학동 재개발 정비 4구역 내 건축물 철거 공사와 관련해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11일 밝혔다.
7명 중 3명은 재개발 시행사인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 3명은 철거 업체 2곳(한솔·백솔) 관계자, 1명은 철거 건물 감리자다.
이들은 철거 공정 전반에 대한 안전 관리 소홀로 지난 9일 오후 건물 붕괴를 일으켜 버스 탑승자 17명을 사상케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전날 1차 현장 감식과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혐의 입증과 함께 붕괴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무너진 건물의 해체 공정이 철거 계획서(5층부터 아래로)와 달리 건물 뒤편 저층부부터 진행됐고, 계획서상 순서를 지키지 않고 각 층을 한꺼번에 부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문기관 감정 등을 통해 확인한다.
◇ 재하도급, 위법 여부 집중 수사
경찰은 현장에서 재하도급을 통한 철거 공사가 이뤄졌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업체 한솔과 철거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는 지역 중장비 업체인 백솔이 참사가 발생한 철거 구역(학동 650-2번지 외 3필지) 내 10개 건축물을 해체하는 작업을 도맡은 정황이 드러났다.
참사 직전 현장에 있었던 굴삭기 기사 등 인부 4명은 모두 백솔 소속이다.
한솔이 백솔에게 다시 하청을 준 정황으로 보인다. 재발주를 통해 공사 금액을 아끼려했고, 이 때문에 무분별한 철거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두 철거 업체간 계약 시점·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 등을 검토 중이다.
◇ 두 달 전 철거 위험 민원, 눈 감은 구청
한 민원인은 지난 4월 7일 국민권익위원회에 '광주 학동 4구역 철거 공사 현장 위험성'을 제기했다.
민원인은 '철거현장 옆은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다. 천막과 파이프로 차단하고 철거하는 것이 불안하다. 그 높이에 파편 하나 떨어지고 지나는 차량유리에 맞는다면 피해자는 날벼락일 것'이라며 미흡한 안전 조치를 지적했다.
관할 구청인 광주 동구는 지난 4월 12일 '안전 조치 명령' 공문을 보내 조치했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공문 발송 이후 안전 조치를 실제로 이행했는지를 직접 감독·점검하지 않았다. 특히 철거 작업이 계획대로 이뤄졌는지 단 1차례도 현장에서 점검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번 사안과 관련, 동구청 공무원 등의 적절한 대응 여부와 감독 부실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무너진 건물의 철거 공정 관리·감독을 맡았던 감리자가 참사 다음 날 새벽 사무실에서 자료를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리자가 10일 오전 3시께 사무실을 찾아 일부 자료를 가져간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같은 날 오후 4시부터 감리자 사무실 등 5곳을 압수수색한 만큼, 감리 관련 자료를 감춘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경찰은 해당 의혹을 포함해 철거 건물 구조 안전성 검토의 적절성, 철거 계획을 어긴 공정, 안전 규정 준수 여부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 국토부도 원인 규명 착수
국토교통부도 이번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중앙건축물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 운영한다.
위원회는 이영욱 군산대학교 교수를 위원장으로 산학연 전문가 10명으로 꾸린다. 건축 시공·구조, 법률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이날부터 8월 8일까지 두 달간 운영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기반으로 재발 방지책도 마련한다. 추후 조사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 합동분향소 추모 발길
광주 동구청 앞에 마련된 재개발 붕괴 참사 합동분향소에는 희생자 9명을 추모하는 시민 발길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안전 불감, 허술한 철거 과정, 구조 안전성 미확보, 다단계 하도급, 감독기관의 무책임한 관리·감독 등이 빚어낸 인재였다며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기관은 희생자 9명에 대한 부검 영장 집행은 유족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정하기로 했다.
광주시는 이번 매몰 사고로 정신적 충격을 입은 피해자들을 위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 치료 지원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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