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세 도입, 국회 논의 시작
업계 "비만율도 안 높고, 정책 효과 미미할 것"
"설탕세 도입해도 오리지널 제품 당 함량 줄일 계획 없어"
조세저항 및 산업계 반발 우려…충분한 의견수렴 거쳐야
탄산음료 등 단맛이 강한 음료를 물처럼 마시는 식습관이 비만의 주범인데, 설탕세가 도입되면 음료 제조업체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설탕을 줄이거나 세금만큼 음료 가격이 올라 소비가 줄어 비만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18일 국회에 따르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당류가 들어있는 음료를 제조·가공·수입·유통·판매하는 회사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긴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糖)이 100L당 20㎏을 초과하면 100ℓ당 2만8000원, 16~20㎏이면 100ℓ당 2만원 등 설탕 함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부담금을 물리는 식이다.
강 의원은 "가공식품 당류 섭취량이 총열량의 10%를 초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비만 위험이 39%, 고혈압 66%, 당뇨병은 41% 각각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며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나라도 비만이 사회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성인 비만율은 34.6%다. 남성이 42.8%, 여성 25.5%다. 2006년 11.6%에 불과했던 청소년 비만율도 2019년 25.8%로 증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연간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1조원이 넘는다.
반면 비만의 주범이 되고 있는 당 섭취는 줄지 않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가공식품 섭취를 통한 하루 평균 당류 섭취량은 36.4g(하루 총열량의 7.4%) 수준이다. 평균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 당류 섭취 권고기준(총열량의 10%)을 충족하지만, 이 기준을 넘어 당류를 섭취하는 국민도 25.3%나 된다. 특히 3~5세 평균 당류 섭취량이 10.1%, 12~18세 청소년이 10.3%로 WHO 하루 권고기준을 넘어서는 등 유아·청소년의 당류 섭취량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류 섭취를 제한하기 위한 설탕세는 1922년 노르웨이가 가장 먼저 도입 했다. 이후 2010년 이후부터 핀란드, 프랑스, 멕시코 등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비만이나 당뇨병 등의 질병을 감소시키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탕세를 도입했다.
2016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설탕의 과다 섭취가 비만, 당뇨병, 충치 등의 주요 원인이며 건강한 식품 및 음료의 소비를 목표로 세금과 보조금 등의 재정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설탕세 도입을 권고하기도 했다.
WHO는 설탕 첨가 음료에 20% 이상의 세율로 설탕세를 부과하면 설탕 음료의 소비와 칼로리 섭취량을 감소시켜 과체중과 비만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WHO가 권장하는 하루 설탕 섭취량은 25g이다. 반면 250㎖ 탄산음료 한 캔에는 약 40g의 설탕이 포함돼 있어 한 캔만 마셔도 WHO의 하루 권장량을 훌쩍 넘어선다. 설탕세 도입을 권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프랑스, 영국, 미국, 멕시코, 핀란드, 말레이시아,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30여개 국가다. 이들 국가들 중 상당수는 실제 당류 섭취 감소로 이어지는 등 정책 효과를 보고 있다.
인구의 70% 이상이 과체중·비만인 멕시코는 2013년 설탕이 들어간 음료에 1ℓ당 1페소(약 60원)의 설탕세를 부과한 후 청량음료 소비가 6% 줄었다. 노르웨이도 설탕세 도입으로 2018년 설탕 섭취량이 24㎏을 기록해 10년 전보다 27% 감소했다. 이들 국가는 자국민의 당 섭취 감소가 설탕세로 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설탕세가 당 섭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물가에 영향을 주는 등 저소득층에게만 부담을 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덴마크는 201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열량 식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했지만 가격이 비싸지자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원정 쇼핑을 하는 바람에 1년 만에 폐지됐다.
노르웨이에도 설탕이 든 음료 매출은 감소했지만, 역시 이웃 국가에서 제품을 구매하는 등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또 설탕세 부과로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맛은 비슷하지만 값은 저렴한 당이 든 음료로 갈아탈 가능성이 커 설탕세가 설탕 섭취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는 2011년부터 탄산음료 한 캔에 1%의 '설탕세'를 부과한 뒤 첫 해에는 판매가 약 3% 줄었으나,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에 익숙해진 후 부터는 판매 억제 효과가 약해졌다.
우리나라도 그동안 설탕세 도입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번번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3년에는 청소년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등 고열량·저영양 식품에 일명 '비만세'인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식음료 업계는 우리나라 비만율이 유럽 국가들 처럼 높지도 않은데다, 도입한다고 해도 다른 대체 당을 찾게 돼 당류 섭취 저감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설탕세 도입으로 인한 음료가격 상승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코카콜라 250㎖ 제품의 경우 1캔 당 27.5원의 세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1캔에 당 27g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음료업계는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인상 하지 않을 경우 이에 따른 손실은 음료 회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로는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반적인 법 도입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우리나라가 설탕세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 처럼 비만율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초반에는 당 섭취량이 줄어드는 등 어느정도 정책 효과가 있겠지만 담배세 인상에서도 봤듯이 나중에는 인상된 가격이 기준가가 돼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식음료 업계는 설탕세가 부과 되더라도 기존의 오리지널 제품은 그대로 두고 설탕을 대체한 천연 감미료 등으로 당은 줄이고 맛은 살린 '무당 및 저당 음료' 출시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무당 및 저당은 단맛은 설탕과 비슷하면서도 당분은 미미한 것을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설탕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기존의 오리지널 제품의 당 함량을 줄이거나 뺄 계획은 없다"며 "설탕세 도입과는 무관하게 이미 무당 및 저당 음료를 출시하는 등 자체적으로 당 저감 노력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제품을 더 늘려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높이는 방향으로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회 내에서도 이와 관련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앞서 지난해 2월 "늘어나는 당류 섭취와 비만율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국민의 식습관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대안으로 설탕세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의 보고서를 내 놓으면서도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민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설탕세는 찬반 의견 및 그 효과에 대한 논란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설탕세는 국민 부담 증가로 인한 조세저항 및 음료 산업계의 반발을 발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도입 검토 시에는 관련 이해당사자, 전문가 등을 포함한 국민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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