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옛 고(古)'가 지니는 의미적 한계"
전문가 반발 "직지가 곧 고인쇄 문화"
전국 유일 고인쇄 전문 박물관 '흔들'
[청주=뉴시스] 임선우 기자 = 충북 청주시가 '직지' 탄생 역사를 지닌 '고인쇄박물관'의 명칭 변경을 시도하고 나서 논란이다.
박물관 이름 중 '옛 고(古)'자가 지니는 의미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근·현대 인쇄문화까지 포괄하는 '신식' 이름을 짓겠다는 발상이다.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즉 '현존 최고(最古)'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사실을 간과한 1차원적 행정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시는 이 과정에서 학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도 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시에 따르면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23일까지 '청주고인쇄박물관 명칭 변경'에 대한 시민 공모가 진행된다.
직지문화특구 지정 등 달라진 위상을 반영하고, 직지와 우리나라 인쇄문화가 인터넷과 반도체 발달로 이어졌다는 가치를 담겠다는 의도다.
포상금도 준다. 30만원에서 최고 100만원이다.
시민 투표와 박물관 운영위원회, 공청회 등의 과정을 거쳐 10월 중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2007년 청주고인쇄박물관 주변이 '직지문화특구'로 지정돼 근현대인쇄전시관과 금속활자전수교육관 등이 들어섰다"며 "'고인쇄'라는 명칭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5~6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반대 의견을 내놨다.
직지가 있기에 고인쇄박물관이 건립된 것이고, 고인쇄박물관이 있기에 직지특구가 지정됐다는 설명이다.
직지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직지 그 자체가 '고인쇄(古印刷) 문화'인 데다, 직지를 간행한 옛 흥덕사 터에 건립된 게 '고인쇄박물관'"이라며 "직지와 고인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직지는 1377년 고려 우왕 3년 때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며, 줄여서 '직지'라고도 부른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은 1992년 흥덕구 운천동 흥덕사지 일대에 건립됐다. 1985년 운천동 택지개발지에서 흥덕사 유물이 대거 발견된 뒤였다.
이 박물관은 신라·고려·조선시대의 목판본, 금속활자본, 목활자본 등의 고서와 흥덕사지 출토유물, 인쇄기구 등 650여점을 보관·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고인쇄 전문 박물관'이다. 개소 당시 박물관 명칭은 국내 최고 권위의 서지학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시는 고인쇄박물관을 뿌리로 해 2013년 금속활자전수교육관을, 2014년 근현대인쇄전시관을 일대에 조성했다. 내년에는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를 준공한다.
지난 2007년 지정된 '직지문화특구'가 완성되는 셈이다.
청주 모 대학 교수는 "직지문화특구 안에 시대별 인쇄문화를 나눠 고인쇄박물관과 근현대인쇄전시관이 있는 것"이라며 "고인쇄박물관을 현대적 의미로 바꾼다면 근현대인쇄전시관과 중복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영국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과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 18세기에 건립된 박물관들도 옛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며 "개관 29년 만에 이름을 바꾸려는 졸속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청주시는 이번 시민 공모에 앞서 전문가 자문도 거치지 않았다. 대학 교수 등 1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고인쇄박물관 운영위원회가 있으나 코로나19를 이유로 최근 1년간 한 차례 회의도 열지 않았다고 한다.
한 운영위원은 "청주시로부터 시민 공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얼마든지 비대면 회의를 할 수 있음에도 운영위원회를 생략한 절차가 아쉽다"고 했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시민 공모를 하면서 운영위원회도 개최할 예정"이라며 "회의 날짜는 정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고인쇄박물관 명칭을 바꾸라는 해당 위원회의 지적이 있었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적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주시는 고인쇄박물관을 건립한 뒤 지난 2000년 박물관을 잇는 길이 52m 규모의 '직지교'를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다리 난간에 '직지' 문구가 아닌 '훈민정음' 문구를 새기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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