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하원, "누구나 쉽게 투표" 통과…'필리버스터' 없애기로 이어지나

기사등록 2021/03/04 22:36:36
[워싱턴=AP/뉴시스] 3일 미국 연방 의사당 앞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가운데)이 투표권 확대법안 하원표결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김재영 기자 = 미국 연방 하원을 장악한 여당 민주당은 3일(수) 투표권 확대법을 220 대 210으로 통과시켰다.

투표 및 선거 관련 모든 분야에 걸쳐 전면적인 개혁 조치를 해 미국인이면 누구나 지금보다 훨씬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의 취지의 791페이지에 달하는 포괄법이다.  

민주주의의 전범이라는 미국은 실제로는 선진국은 물론 많은 중진국보다 투표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쉬운' 투표를 막는 여러 제약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데 '선거 부정'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 공화당이 한 세대 전부터 열심히 세워오고 있다.

117대 연방 하원 1호법안으로 '2021년 국민을 위한 법'이란 타이틀의 투표권 확대법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자동적 유권자 등록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유권자 명부에 이름이 등재되어야 투표 용지가 발송되고 이를 통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은 선거관리 당국이 이 등록을 해주고 있어 사람들은 유권자 등록의 중요성을 알기 어렵다.

미국만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서는 투표권을 갖는 연령의 성인 스스로 유권자 등록을 해야 투표용지를 받고 투표할 수 있다. 공화당의 투표 제약 타깃인 흑인 등 소수계에 대한 유권자 등록 권유 및 협력이 민주당 선거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이다.

이를 한국처럼 자동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서 가장 민주적으로 진보한 '쉬운' 유권자 등록 방식은 운전면허 딸 때 안 하겠다고 체크아웃 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유권자 등록까지 한꺼번에 되는 방식이나 오리건 등 단 3개 주에 그치고 있다.

법안에는 공화당의 투표 제약 단골조치인 투표자 신분확인을 아주 간소하는 것도 들어있다. 칼라 사진을 필수로 요구하지 못하게 된다.

또 공화당이 싫어하는 사전투표를 최소 연속 15일간 실시하고 부재자 투표 즉 우편 투표 신청을 가능한 한 허용하도록 한다.

한 번 유권자 등록을 하면 최소 4년 간은 그 사이에 열리는 주 및 연방 선거에 등록없이 계속 투표할 수 있는데 공화당 편향의 '빨간'주들은 1년마다 이 등록명부를 정리해 선거 때마다 등록하도록 요구한다. 확대법은 이 명부 정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확대법은 또 미국 정치의 큰 병폐인 다수당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어처구니없이 이리저리 갈라붙이는 게리(제리)맨더링에 칼을 대 독립적 위원회가 선거구 획정을 하도록 했다.

미국은 1965년 민주당의 존슨 대통령이 '투표권' 법을 통과시켜서야 흑인 다수가 투표를 할 수 있었다. 노예해방 후에도 100년 동안 흑인 분리주의의 '짐 크로우' 법으로 흑인 투표를 철저히 막았다. 연방 투표권법에 반발해 공화당은 각 주정부 법으로 투표제한 법률을 다수 만들었고 급기야 2013년 연방 대법원이 주의회의 이런 제한을 합법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하원 민주당이 통과시킨 연방 투표권 확대법안은 역사적인 투표권법에 가해진 수십 년 간의 제한을 일거에 뜯어내고 털어내버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30개 주에 가까운 주의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은 트럼프 낙선 후 조지아주를 비롯해 많은 주의회를 통해 투표권을 더 제한하는 법안을 성사시키려고 열심이다. 특히 50 대 50인 연방 상원에서 하원의 투표권 확대법안이 통과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미국 상원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규정인 '필리버스터' 때문에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찬성해주지 않는 한 법안은 이 수렁에 빠져 폐기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래서 민주당 진보파들은 이번 기회에 '상원 필리버스터를 없애자'고 벼르고 있다. 미국 의회 규정이 묘한 것이 필리버스터 무효화는 단순과반 찬성이면 된다는 사실이다.

공화당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직후 대통령 취임 후 '필리버스터 없애기' "연방 대법원판사 늘이기' '수도 워싱턴의 주 만들기' 등을 시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바이든도 수긍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투표권을 제한한 온갖 '악습'과 '적폐'를 일거에 불태워버리려는 700페이지 분량의 투표권 확대법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필리버스터를 없애려고 할 수 있다.

투표권 확대법이 어쩌면 '60명 상원의원이 찬성해야만 법안 통과를 장담할 수 있게' 만든 상원 필리버스터 규정의 목을 치는 트로이의 목마일 수 있는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kjy@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