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배재·세화 자사고 취소 안돼…기준 소급적용"(종합2보)

기사등록 2021/02/18 18:45:09

자사고 지정처분 취소에 행정소송

법원 "평가기준에 중대 변경 가해"

"평가기준 변경·신설 사전 고지해야"

"입법취지와 공정심사 요청에 반해"

교장들 "열심히 교육에 전념하겠다"

[서울=뉴시스] 배재고등학교(왼쪽)·세화고등학교(오른쪽)의 모습.
[서울=뉴시스] 옥성구 기자 = 배재고등학교와 세화고등학교가 교육 당국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위 박탈과 일반고 전환 처분이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내 법원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서울시교육청이 뒤늦게 변경한 평가기준을 소급 적용한 것이 배재고·세화고의 평가 점수가 미달되는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에 해당해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18일 배재고의 학교법인 배재학당과 세화고의 학교법인 일주·세화학원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2014년 운영성과 평가를 받은 자사고를 대상으로 2019년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계획했다. 당시 자사고 지정취소 판단기준 점수는 최소 70점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9년 8월 평가 점수에 미달한 배재고·세화고를 비롯해 경희고·숭문고·신일고·이대부고·중앙고·한대부고 8개교에 지정취소를 통보했다. 경기 안산 동산고, 부산 해운대고도 각 관할 시·도교육청에서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들 각 자사고는 교육 당국의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효력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채 신입생을 선발해 왔다.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자사고 재지정 취소 처분 취소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1.02.18. radiohead@newsis.com
우선 재판부는 근거 법령이 위헌·무효가 아니며,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절차 취소 처분에 있어서 절차적 위법은 없고 평가위원 구성의 위법 및 평가의 편향성도 없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019년 평가계획에서 신설·변경된 교육청 재량지표, '감사 및 지적사례' 평가지표를 비롯해 서울시교육청이 평가지표와 평가기준에 중대한 변경을 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평가대상 기간이 이미 대부분 도과한 후 그와 같은 기준을 이 사건 학교 운영성과에 소급 적용한 후, 배재고·세화고가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 운영성과 평가계획에서 감점 평가지표로서 '감사 등 지적사례'의 감점 기준을 최대 -12점까지 확대했고, 배재고와 세화고가 이로 인해 점수에 미달된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는 이 사건 학교에 대한 평가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중요한 지정취소 요건을 변경하거나 주요 평가지표를 신설·변경하는 경우 그 내용 등이 사전에 고지됐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이 사건 평가기준의 교육청 재량지표는 자사고 지정 시의 검토사항이나 2014년 평가기준을 바탕으로 할 때 예측가능성이 낮고, 자사고 지정 목적과도 비교적 관련성이 떨어져 합리적 범위 내 평가기준 변경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자사고 정책 결정은 국가교육의 철학과 방향 문제"라며 "서울시교육청 주장대로 부작용이 드러났다면, 변경된 교육정책 방향 하에 평가기준을 수정·설계해 학교법인에 그러한 운영을 유도할 사유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를 종전의 평가기준을 신뢰하고 운영한 배재고·세화고에 행정처분을 통해 평가기준을 소급 적용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침익적 효과를 가할 중대한 공익상 필요를 뒷받침할 사정으로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중대하게 변경된 평가기준을 소급 적용해 평가를 진행하고, 배재고·세화고가 지정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는 처분기준 사전공표제도 입법 취지에 반하고, 재지정제도의 본질 및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면서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뉴시스]이윤청 기자 = 김재윤(왼쪽) 세화고등학교 교장과 교진영 배재고등학교 교장이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지정 취소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승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02.18. radiohead@newsis.com
판결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고진영 배재고 교장은 "오늘 판결에 따라 배재고와 세화고가 자사고 지위를 되찾게 된 점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며 "저희는 자사고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계속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재윤 세화고 교장은 "모두 신중하긴 했지만 이런 결과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지정 취소라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 법원에 신청했고, 그 결과가 나와 다시 열심히 교육에 전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 앞서 부산 해운대고는 지난해 12월 부산시교육청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에도 법원은 부산시교육청의 자사고 취소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11월 자사고·외국어고 등 특목고를 2025년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지난해 시행령을 개정한 상태다.


◎공감언론 뉴시스 castlen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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