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연맹, 드래프트 때 학교장 확인서 등 학교폭력 발본색원
숨은 학교폭력 핀셋 검증 실효성에 '의문'
체육계 폭언·폭력 등 강압적 분위기 당연시하는 문화 개선돼야
낯 뜨겁게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제 무대에서의 놀라운 성과들에 가려졌을 뿐 한국 엘리트 체육의 폭력은 켜켜이 쌓인 고질적 병폐다. 운동부가 있는 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지도자의 선수 구타, 운동부 선후배 간 체벌, 학생 선수의 일반 학생 괴롭히기는 한 번쯤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것이다.
학교 체육에 깊숙히 뿌리 내린 폭력은 선후배 문화, 실력 지상주의와 맞닿아있다. 좀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합숙 시스템도 폭력을 감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최근 국내를 대표하는 이재영-이다영의 학교 폭력 논란은 배구계를 넘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팬투표로 올스타에 선발됐던 두 선수는 코트 복귀를 기약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지난 16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자연스레 남자부 송명근, 심경섭(이상 OK금융그룹)을 포함한 선수 4명의 징계 여부가 언급됐다.
결과적으로 KOVO 차원의 징계는 없었다. 회의에 동석한 변호사들이 KOVO 규정을 면밀히 검토했지만 현 규정만으로는 학생 선수 시절 행위로 처벌하긴 어렵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질 것이라는 일부 배구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진 못했지만 세 시간 가량의 마라톤 회의가 전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KOVO는 앞으로 치러질 신인 드래프트부터 과거 학교폭력과 성범죄 등에 중하게 연루된 선수들을 전면 배제하기로 했다.
드래프트 참가 선수는 본인이 학교 폭력과 무관하다는 서약서와 해당 학교장 확인서를 제출 받는 방식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추후 내용이 허위로 밝혀질 경우 선수에게는 최대 영구제명의 중징계를, 해당 학교에는 학교 지원금을 회수하기로 했다.
그럴싸해 보이면서도 실효성에는 의문이 붙는다. 한 명이라도 더 프로에 보내 지원금이 확보해야 할 학교측이 선수를 명명백백하게 조사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추후 문제가 된다면 받은 지원금을 반납하면 된다.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 지원금은 그대로 학교가 소유하면 된다. 프로행이 임박한 선수가 극적으로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드래프트 신청을 포기하는 것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지금 문제가 불거진 선수들의 처벌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과거 행적을 알 리 없는 구단에 책임을 무는 것도 쉽지 않다. 드래프트 전 검증은 KOVO 입장에서 그나마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식이지만 그렇다고 허탈한 심정으로 바라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도 그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훈을 찾아야만 달라질 미래가 있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아무리 뛰어나도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설 자리는 없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를 지금의 어린 선수들과 이들의 지도자들에게 심어줘야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앞으로 1~2년 안에 이런 사태가 또 발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지금 대책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면서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어린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줬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분명한 학습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설 자리가 없다는 분위기와 남을 해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맞물릴 때야말로 체육계 폭력이 일정 부분 걷혀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봉사활동과 연봉 반납으로 분위기를 조성한 뒤 '배구로 속죄하겠다'며 가해자들이 슬쩍 돌아온다면 배구계가 지금 겪고 있는 진통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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