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이온전지 분리막은 미세한 상처로도 상품성이 쉽게 훼손되고, 산업 특성 상 과잉 생산으로 재고가 발생해 매달 축구장 면적의 130배에 달하는 100㎡ 상당이 버려진다. 재활용이 어려워 폐기물로 처리돼 환경문제로 이어진다.
사회적 기업 라잇루트는 버려지는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을 이용해 고기능성 원단을 만드는 기업이다. 배터리 분리막에 각종 소재를 접목해 신소재로 재탄생시킨다.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는 "최대한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친환경을 실현하겠다"는 각오다.
"좋아서 뛰어든 패션 산업, 쓰레기 더미 마주해"
옷을 좋아해서 패션 업계에 발을 들인 신 대표는 청년 디자이너의 열악한 환경을 마주하고 지난 2015년 청년 디자이너를 인큐베이팅하는 사회적 기업 라잇루트를 설립했다. 청년 디자이너와 호흡을 맞추며 이들의 사회 진출과 건강한 패션 산업을 꿈꾸고 있다."매체에서는 패션 업계의 멋진 모습만 조명되지만 실상은 폐업률이 항상 5위 안에 드는 열악한 산업이에요. 좋은 옷을 많이 접하고 계속 입으려면 좋은 디자이너가 많이 배출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신 대표가 마주한 현실은 패션 업계의 열악함 만이 아니다. 매일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도 패션 업계의 또 다른 현실이었다. 종사자로서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2016년에는 폐기 처리 위기에 놓인 잉여 원단으로 제품을 만드는 잉여원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봉제공장에서 버려진 원단이나 버려지기 직전의 원단을 직접 눈으로 한 번 보면 그 쓰레기를 무시하기가 힘들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잉여원단 프로젝트를 했고, 자연스럽게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버려지는 배터리 분리막이 있다고? 옷으로 만들면 어떨까"
신 대표가 잉여 배터리 분리막에 대한 정보를 접한 건 지난 2019년께다. 분리막의 단면 구조가 세계적인 소재 브랜드 고어텍스에서 사용하는 멤브레인 필름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렇다면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지난해 1월 연구개발 전담 부서를 설립, 최적의 조건을 찾는 데 9개월이 걸렸다."배터리 분리막은 의류에 사용되는 필름과 달리 전혀 늘어나지 않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요. 붙이는 게 핵심이 아니었어요. 붙였는데 소리가 난다거나, 너무 종이처럼 된다거나, 플라스틱처럼 된다거나 이런 상황이 발생했죠. 온도, 접착제의 양과 성질, 압력, 속도 이런 다양한 요인이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조건을 찾는데 9개월이 걸렸어요. 첫 시제품을 지난해 8월쯤에 받았고, 그 때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을 했죠."
배터리 분리막의 가격 역시 매력포인트가 됐다. 라잇루트는 고어텍스 멤브레인 필름 가격의 40분의1 수준으로 저렴하게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받고 있다. 폐기 처리 위기에 놓인 잉여 필름을 쓰기 때문이다. 완성된 분리막을 분해해 재가공하기 않고 그대로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공정에 드는 비용도 축소된다.
배터리 분리막을 붙인 울의 강점은 단연 뛰어난 기능이다. 천연 소재인 울이 갖지 못한 투습성과 방수성을 보완한 신소재로 탄생시켰다.
"겨울에도 코트 입고 싶어 하는 분들 있잖아요. (분리막 소재의)물성 검사를 해보니 일반 플리스보다 보온성이 20% 높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울이 원래 가진 보온성에 분리막을 결합하면 웬만한 겨울 옷보다 훨씬 따뜻합니다. 방풍이나 투습성, 내수성, 내구성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요."
화학물질을 옷의 소재로 만드는 것에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신 대표는 "몸에 닿았을 때 문제가 되는 성분이 있는지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필름이 생산돼 잉여로 남겨지고 저희한테 넘어올 정도의 시간이 되면 안 좋은 성분은 전부 휘발된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올 해 하반기 출시 예정…코오롱과 협업하고 싶어"
라잇루트의 소재로 만들어진 옷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출시 예정이다. 현재 소재 개발 단계를 지나 특허 등록만을 앞둔 상태다.패딩이나 등산복 등 기능성 의류 뿐 아니라 내구성이 좋고 방풍·투습·내수 기능이 탁월해 텐트, 파우치, 커튼, 쇼파 등 리빙 제품, 건축자재 등으로 활용 방안도 무궁무진하다. 이미 가능성을 알아본 주요 기업의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
신 대표는 가장 먼저 협업하고 싶은 의류 브랜드로 코오롱을 꼽았다. "코오롱이 친환경 가치를 내세우고 있어서 아웃도어 브랜드 중에서 가장 저희와 결이 맞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쏟아지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라잇루트 같은 친환경 브랜드가 생기는 것보다 소비자가 쉽게 물건을 사고 버리는 문화를 바꾸는 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패션 산업의 만들어내는 쓰레기가 정말 심각하거든요. 저희는 대를 이어 입을 수 있게 최대한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목적이에요. 쉽게 소비할 수 없는 소재가 됐으면 해요. 결국은 소비문화를 바꾸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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