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코로나19 사태는 미술계도 강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각 시도에서 열리는 주요 비엔날레 연기와 취소가 잇따랐다. 경제력있는 상업화랑은 VR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코로나 직격탄으로 전시는 얼어붙었다.
국내 최대 최고 아트페어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코로나로 매년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하던 전시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뷰잉룸으로 전시를 개최했고, 1995년부터 매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어오던 마니프 아트페어도 현장 전시를 취소하고 온라인아트페어로 전환해 펼쳤다. 또 부산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강원키즈트리엔날레, 대전비엔날레 등 소수의 비엔날레가 온라인으로만 개막했다.
2020년 올 한해에 미술계에 주목된 전시와 이슈를 미술평론가 김성호, 김영호, 윤진섭, 이선영, 조은정, 최열, 김달진 김달진미술연구소장 7인과 함께 설문조사를 통해 짚어봤다.
# BTS-커넥트전- RM 전시 행보 선한 영향력 전파
2020년 1월은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전시로 시작됐다. 방탄소년단의 철학과 메시지를 현대미술 언어로 확장한 글로벌 전시 프로젝트 '커넥트, BTS'가 서울로 이어져 주목받았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아미’의 영향력을 연결하여 세계 5개국의 국제적 미술가와 기획자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런던, 베를린,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 뉴욕에서 펼쳐진 글로벌 프로젝트 전시였다. BTS의 리더 RM(김남준·26)은 올 한해 미술계에 ‘RM 효과’를 과시했다. 바쁜 일정에도 전국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등을 방문하는 등 한국 미술에 남다른 관심을 드러내며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스스로 인플루언서가 되어 김종학, 이배, 윤형근, 김보희 등 다양한 전시를 팬들에게 소개하며 미술과의 접점을 이어나갔다.
특히 RM은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책 보급 등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자신의 생일(9월 12일)을 기념해 미술책을 읽는 문화가 확산하고 청소년들이 예술 감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후원, 미술계를 놀라게했다.
# 간송미술관 소장품 2점 유찰, 세한도 기증
지난 5월 케이옥션 경매에 15억원에 나왔던 간송미술관 소장품 2점이 허망하게 유찰됐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민족 문화유산을 사들여 지키려고 설립한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에서 사상 처음으로 나온 보물이어서 대중들도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불상 2점의 매각은 무산됐다. 삼국시대의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과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으로 둘 다 1963년 국가지정 보물이었다.반면 유찰된 보물 불상 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들였다. 국민 모두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전시를 통해 국민의 문화 향유권을 지킬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불상 구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구입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문화재계에서는 두 점을 합해 30억원 이하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문화재 경매 유찰로 상속세와 일반 세금 납부에 미술품을 포함시키는, 이른바 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조세 제도의 추진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국보 제180호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기증되어 미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선사했다. 지난 9월 세한도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손창근(91) 선생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 감사 인사를 했다.
손창근 선생은 2018년 추사의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 서화 304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인물로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4년 문화유산 정부 포상이 시작된 이래 금관문화훈장(1등급) 수훈은 처음이다.
# 조영남 대작사건 무죄 확정...전시 잇따라
2016년 대작 논란이 불거지며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던 조영남 씨가 2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았다. 4년간의 공방을 통해 창작의 범위와 인정, 현대미술에서의 개념과 분업의 주체, 넓게는 저작권에 관련된 논의까지 환기시킨 사건이다.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리겠다"고 밝힌 조영남은 무죄 선고와 함께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100문 100답을 모은 신간을 발간하는 한편, 충남 아산에서 개인전 시작으로 서울 청담동에서 전시를 잇따라 열며 '화수'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 미술인의 복지 이슈 공론화
코로나19시대는 바이러스만큼이나 빈부격차의 확대라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미술인들은 사회의 주변인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코로나라는 큰 위기를 통해 단지 예술지원을 넘어 시민으로서의 복지가 필요한 계층으로 인식되었다.
12월 10일 예술인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되면서 작가들의 표준계약서 등 서면계약 체결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에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은 지난 10일부터 예술계 서면계약 체결 문화 정착을 위해 모바일이나 PC로 간편하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전자계약 서비스 지원에 나섰다.
재단은 예술계의 서면계약 체결을 독려하기 위해 모두싸인의 전자계약 서비스를 문화예술기획업자가 1년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전자계약 서비스를 이용하면 계약서 업로드 및 전송, 체결, 계약서 보관 및 관리까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 총 1000억 원 규모의 전국 공공미술 프로젝트 추진
정부가 예술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초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발표되어 주목받았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예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주민 문화향유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다. 전국 228개 지자체의 예술인 8500명이 참여하는 '우리 동네 미술사업'으로 문체부와 지자체의 예산을 포함해 총 1000억원 규모다. 전국 시 구군 구별로 약 4억원이 할당됐다. 벽화와 공공조형물 등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세워진다는 계획으로 사업은 내년 2월까지 추진된다. 이 외에도 올해 미술계 숙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1급 공무원으로 격상되었고, 공립미술관 평가인증 제도가 실시됏다.
#2020년 주목받은 기획전과 개인전
3월1일 종료된 현대화랑 개관 50주년 기념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 한국 근현대인물화'전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한자리에서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근대미술의 도입기에서 2000년대까지 100년에 걸친 54명 작가의 인물화 71점을 전시한 이 전시는 상업화랑에서 좀처럼 펼칠수 없는 기획전으로 국내 메이저 화랑으로 50년의 역사를 아우라를 발휘했다.5월 소마미술관에서 개막한 '류인 : 파란에서 부활로'전도 좋은 전시로 꼽혔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요절한 작가와 조각작품을 전달한 전시로 한 획으로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인의 독보적인 인체구상 조각 세계를 통해 작가가 추구한 조형세계를 작품과 드로잉, 아카이브를 통해 살펴본 전시였다. 처절하거나 강렬한 것이 아니라 우울함을 투쟁으로, 분노를 통쾌함으로, 진지함을 명쾌함으로 전환시키면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이다.
9월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내 나니 여자라' 전시는 한중록의 저자 혜경궁 홍씨를 매개로 2020 기관의제인 ‘여성’의 동시대적 정서를 고찰했다는 평으로 기록될만한 기획전시로 꼽혔다. 윤석남, 임민욱, 강애란, 슬기와 민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모색했다.
박래현 스스로에게 붙였던 '삼중통역자'라는 단어는 전시 부제로 회화, 판화, 태피스트리의 세 매체를 연결한 그의 작품 세계를 담았다. 이를 통해 20세기 여성을 표상하며 더 나아가 어떻게 새로움을 섭취하여 나갔는지까지 진취적인 여정을 보여주며 미술사적 평가의 아쉬움이 남았던 작가를 재조명하며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룬 전시였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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