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법 비판 속 국무회의 통과…바이든과 마찰 일으키나

기사등록 2020/12/22 17:46:35

잇따르는 비판에 정부·여당 전방위 여론전 나서

北인권 원칙적 입장 바이든 정부와 엇박자 소지

정부, 법 시행 의지 분명…"해석지침 제정할 것"

[서울=뉴시스]23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인근에서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이 발견됐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전날 밤 11시 경기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에서 대형 풍선 20개를 동원해 대북전단을 기습 살포했다고 밝혔다. (사진=강원도민일보 제공) 2020.06.23.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지현 기자 =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미국 정계와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여당은 "법안을 오해한 것"이라며 전방위 소통에 나섰지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와 외교 마찰을 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2일 국무회의에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공포안을 의결했다. 미국 정계와 국제 인권단체들의 규탄 속에서도 이 법을 공포·시행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개정안은 대통령 재가 등 절차를 거쳐 오는 29일 관보 게재를 통해 공포될 예정이다.

개정안은 전단 살포, 대북 방송 등 남북합의서 위반 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 및 시각매개물 게시 ▲전단 등 살포 행위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또 이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하원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의원이 지난 11일 성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마이클 맥카울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가 법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미 의회 지한파 의원 모임 코리아 코커스 공동의장인 제럴드 코널리 하원 의원은 지난 17일 법안 수정을 촉구했다.

[서울=AP/뉴시스] 토마스 오헤야 킨타나 유엔(UN)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처리된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시민사회 단체 활동에 제약을 가한 것이라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16일(현지시간) 밝혔다. 2020.12.17.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법이 전단 살포 행위를 형사처벌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형량을 최대 3년 징역으로 결정한 것은 과잉금지 원칙을 훼손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달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인사들은 아직 구체적으로 대북전단법에 대해 언급한 바 없다. 그러나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은 지난 16일 영국 의회 내 '북한에 관한 초당적 의원모임'이 개최한 온라인 청문회에서 이 법이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와 상치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와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의 기고문을 통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8~11일 방한 당시 대북전단법에 대한 염려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최근 강창일 주일대사 내정자와의 비공개 면담에서 이 법안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없는지 물었다고 한다.

[파주=뉴시스] 이호진 기자 =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22일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서 살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대북전단 풍선에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대형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0.06.23. (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photo@newsis.com
외교부는 비판이 잇따르자 주미 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미국 의회와 접촉하는 등 국제사회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에 별도의 외교공관을 둔 국가들의 주한 대사관과 협의체인 '평화 클럽'과 남북 업무를 겸임하는 주한 공관을 둔 국가들 모임인 '한반도 클럽'을 중심으로 법안 설명자료를 전달했다.

장·차관이 직접 나서 여론전을 펼치고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 CNN 인터뷰 브로프램에 출연해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제한될 수 있다"고 했고, 최종건 1차관도 라디오에 출연해 "대북전단금지법은 120만 접경 주민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서호 통일부 차관은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에 "북한 인권을 위해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효율적인 행동"이라고 밝혔다.

여당도 팔을 걷어붙였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21일 "미국 의회 일각에서 개정법의 재검토를 거론하는 건 유감스럽다"고 했고, 허영 대변인은 "국회에서 민주적인 논의를 거쳐 개정한 법률에 대해 자국 의회의 청문회까지 운운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며 "한국 내정에 대한 훈수성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고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38노스 기고문을 통해 "대북전단은 인권 개선보다는 체제 전복 목적의 심리전이며, 이는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더욱 봉쇄하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라고 했다.

[인천=뉴시스] 이종철 기자 =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북측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남북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가운데 10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농가 주변에 '대북 쌀 보내기 행사 절대 반대'를 표명하는 지역주민 측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0.06.10. jc4321@newsis.com
그러나 미 국무부 대변인은 21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으로의 정보의 자유로운 유입을 위한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며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해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현했다. 미 의회 초당적 인권기구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스미스 의원이 예고한 대로 내년 1월에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청문회를 열 방침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위원회는 법안의 세부 내용을 검토하기 위한 실무자 브리핑을 여는 등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바이든 정부 기조와 엇박자를 낼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대북전단 금지 입법은 주권국가의 결정사항인 만큼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더라도 수면 아래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대북전단금지법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북중 국경을 통해 전달되는 USB·DVD 등을 포함한 모든 대북 정보 유입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국제사회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인영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법 시행 전까지 '전단 등 살포 규정 해석지침'을 제정해 당초의 입법 취지대로 제3국에서 전단 등을 살포하는 행위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탈북민 단체 등은 헌법소원을 제기할 방침이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등 27개 시민단체는 문재인 대통령이 법안을 재가하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및 헌법소원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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