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27일 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세미나실에서 진천군이 주최하고 충북대 박물관이 주관하는 '진천의 근대 인물과 장신(將臣) 신헌(申櫶) 가계'란 주제의 향토사 연구 심포지엄에서 신팔균 장군의 가족사를 짚었다.
박 교수는 '독립운동으로 스러진 장신 후예 신팔균 가족의 삶'이란 주제 발표에서 "1924년 신팔균 부부와 자녀 현길·계영 등 4명과 1930년 현충 등 5명의 가족이 독립운동으로 비명에 스러졌다"며 "독립운동사에서 무장투쟁사가 전투사 중심으로 논의된 독립운동사가 정립되려면 생활사와 가족사 등 이면의 역사가 규명돼야 한다"고 이번 주제 발표의 취지를 설명했다.
박 교수는 먼저 '진천군 광무양안' 분석으로 신팔균의 독립운동 경제적 기반을 살폈다.
신팔균은 진천에 토지 4필지 27부 5속의 빈농을 겨우 면한 소농 수준이었다.
신팔균의 전사(戰死) 과정과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그의 부관 정이형(鄭伊衡·1897~1956)의 회고록과 장남 신현충(申鉉忠)의 행적을 새로 발굴한 이세영(李世永·1870~1941)의 일기 '고광연보(古狂年譜)'를 통해 가족사의 죽음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박 교수의 이번 발표는 의미가 적잖다.
박 교수는 이들 자료 분석을 통해 무기를 뺏으려는 중국 지방군(마적)의 습격을 받아 항전하는 과정에서 신팔균이 전사했다는 선행 연구를 수정했다.
대한통의부 사령장 신팔균의 전사 과정은 통일부 의용군의 유일한 기록인 부관 정이형의 자료('동천 신팔균장군의 전사')에서 확인했다.
일제로부터 독립군 탄압을 강요받은 동변도윤(東邊道尹) 병극장(邴克莊)의 비밀 연락을 받고 만나려 하던 중 중국 군대와 충돌해 전사한 것으로 박 교수는 정리했다. 병극장은 신팔균과는 절친한 사이였다.
박 교수는 "신팔균의 전사는 일제가 사이토 총독 저격 의거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중국 관헌에게 독립군 토벌의 압력을 가해 출동한 중국군과 전투로 빚어진 참극이었다"고 말했다.
신팔균의 동지이자 아내인 임수명(任壽命·1894~1924)은 신팔균의 전사 소식을 듣고 자결한 것을 박 교수는 '순열(殉㤠)'로 정립했다.
신팔균의 전처 김씨 소생인 장남 신현충의 장인이 부친과 무장투쟁론의 동지였던 조성환(曺成煥·1875~1948)이란 사실도 처음으로 확인했다.
박 교수는 "신팔균 전사 후 같은 해에 임수명과 신현길, 신계영이 죽었고, 1930년 신현충이 자결해 장신 명가 일문 5인이 독립운동으로 비명에 스러졌다. 독립운동사에서 부부나 부자가 자결한 기구한 가족사는 더러 있으나, 신팔균 가족과 같은 애잔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팔균의 가족사는 무반 장신 후예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 사례이자 1920년대 독립운동의 이면을 보여주는 아픈 역사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7일 심포지엄에서는 박 교수 외에 ▲진천의 근대 인물과 유장 신헌(신영우 충북대 교수) ▲진천 신헌고가의 가치에 따른 보존과 활용(안대환 충북대 교수) ▲고종 시기 군사지휘관과 포도대장으로 활약한 신정희·석희 형제(이근호 충남대 교수) 등이 주제 발표도 소개된다.
주제 발표 후에는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한편 정부는 신팔균 선생과 부인 임수명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과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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