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영결식 이후 발인…장지까지 운구 행렬 이어져
이재용 등 유족, 삼성 사장단, 기업인 등 영결식 참석
화성사업장서 전현직 임직원, 협력사 직원들도 인사
추모영상서 소년 이건희, 경영인 이건희 등 모습 조망
"이건희 회장만큼 부친 뛰어넘는 성과 이룬 사람 없어"
"고인처럼 이재용 부회장도 삼성 더욱 탄탄히 키우길"
캐시카우 반도체 휴대전화 등 육성해 성장 기틀 마련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신경영으로 삼성 도약
이건희 타계로 국내 1·2세대 회장 시대 서서히 저물어
[서울=뉴시스] 고은결 기자 = 지난 25일 78세의 일기로 타계한 한국 재계의 거목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8일 수원 선영에서 영면에 들었다.
이건희 회장의 유족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은 이날 오전 7시30분쯤 영결식이 진행되는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건물 쪽에 들어섰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동생인 이명희신세계그룹 회장, 조카 이재현 CJ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참석했다.
재계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 등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의 영결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처럼 비공개로 진행됐다. 영결식은 유족 및 삼성 사장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간 진행됐다.
삼성에 따르면 영결식은 이수빈 삼성경제연구소 회장의 약력보고, 고인의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의 이건희 회장과의 추억, 추모영상 상영, 참석자 헌화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수빈 회장은 약력보고를 하면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산업의 초석을 다지고 신경영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고인의 삶을 회고하다, '영면에 드셨다'는 부분에서는 목이 메인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필규 회장은 위대한 기업가로 성장하기 이전, 어린 시절 이건희 회장의 비범함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몰두하는 모습, 그리고 반도체 산업 진출을 아버지인 선대회장에게 진언한 일화 등을 회고했다.
김 회장은 고인이 도쿄 유학시절 지냈던 2층 방이 전축, 라디오, TV로 가득하고, 이 회장이 이를 모두 분해해 재조립하고 있던 모습을 본 이 부회장의 고교 은사 한우택 선생님의 경험담도 소개했다.
김 회장은 "'승어부'라는 말이 있다. 아버지를 능가한다는 말로, 이것이야말로 효도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이건희 회장보다 '승어부'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창업자인 부친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이뤘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이어 "부친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건희 회장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이 이건희 회장의 어깨 너머로 배운 이재용 부회장은 새로운 역사를 쓰며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추모 영상에서는 1987년 12월 삼성 회장 취임 이후 2014년 쓰러지기까지 변화와 도전을 통해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경영인 이건희, 사물의 본질 탐구에 몰두하는 소년 이건희, 스포츠 외교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에 기여한 이건희 등 이 회장의 다양한 면면을 조망했다.
오전 8시21분쯤 상주 이재용 부회장과 다소 수척해진 모습의 홍라희 전 관장, 울음을 참는 듯한 이부진 사장, 굳은 표정의 이서현 이사장 등 순으로 이 병원 밖에 나와 미리 준비된 유가족용 버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부회장의 자녀인 지호 씨, 원주 씨 등은 장례식장 입구 인근에 마련된 별도 유가족용 버스에 탑승했다. 유가족용 버스는 발인 이후 운구차 출발을 기다리기 위해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왔다.
이후 발인까지 마친 뒤 오전 8시50분쯤 장례식장에서 운구차가 출발하며 유족용 버스 등이 뒤따르는 운구 행렬이 출발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11시부터 약 25분간 화성사업장을 돌았다.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많은 임직원들이 나와 회사에서 준비한 3000여송이의 국화를 받아 들고, 약 2Km에 달하는 화성캠퍼스 내 도로 양편에 4~5줄로 서 있었다.
오전 11시께 운구행렬 도착 직전에는 라인 근무자 등 더 많은 임직원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출근길을 지켜봤다.
고인이 2010년과 2011년 기공식, 준공식에 직접 참석해 임직원들을 격려했던 16라인 앞에서는 이 부회장 등 유가족들이 모두 하차했다.
이곳에서 과거 16라인 방문 당시의 동영상이 2분여간 상영됐고, 방진복을 입은 직원들이 16라인 웨이퍼를 직접 들고 나와 고인을 기렸다. 유가족들은 버스 탑승 전 임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표했다. 임직원들은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자리에는 전현직 주요 경영진과 임원들, 수천여명의 직원들 뿐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도 함께 나와 고인을 배웅했다. 육아 휴직 중임에도 직접 나온 임직원도 있었고, 인근 주민들도 나와 고인과 작별인사를 했다.
고인은 2004년 반도체 사업 30주년 기념 행사를 포함해 2003년, 2010년, 2011년 등 화성캠퍼스에 4차례 방문한 바 있다.
이후 운구 행렬은 최종 목적지인 장지로 향했다. 장지는 집안의 윗대 어른들을 모신 경기 수원의 삼성가 선영이다. 유가족을 비롯해 삼성 사장단 또한 장지까지 가며 고인의 마지막길을 함께 했다.
이곳 선영에는 오후 12시 5분께부터 고인을 기리는 목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유가족과 스님들로 보이는 행렬 20~30명이 선영에 설치된 흰색 천막으로 입장했다.
마스크를 쓴 유족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장례 절차를 마친 뒤 이 회장을 묘역에 안장했으며 이후 선영에 들어간 지 약 1시간40분 만에 다시 운구차량들이 나왔다.
한편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인이 경영 일선에 뛰어든 시기는 1966년 9월이다. 같은 해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해 1968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됐다.
이후 반도체 사업 등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글로벌 무대에선 다소 뒤처지던 삼성전자를 명실상부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입원하기 전까지 약 27년간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이른바 '신경영'을 내세우면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을 주창했다. 신경영은 지난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선언식에서 그가 했던 발언인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슬로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 능력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2002년에 세계 전자 업계의 선도 기업이던 소니를 넘어서면서 삼성을 바라보는 글로벌 기류가 크게 변했다. 고인은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반도체, 휴대전화 등 분야를 집중 육성했다.
2002년은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반도체 관련 기술과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당시 1위 기업인 도시바의 제안을 거절하고 독자적으로 낸드플래시 개발을 고집했다고 한다.
고인은 2005년 들어 '창조 경영'을 내세우면서 신사업 개척을 강조했다. 이후 삼성그룹은 신수종사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바이오, 나노, 로봇 등과 같은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2010년 들어 삼성그룹은 휴대전화와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확고히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7월 삼성전자의 액정디스플레이(LCD) 사업부와 자회사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등을 합병해 삼성디스플레이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 옴니아 등 시행착오를 겪고 갤럭시 브랜드를 통해 애플 독점이나 다름없던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당시 시장 흐름을 선도하지 못한 종전 주류 기업인 모토로라, 노키아 등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상실해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산업의 흐름을 내다보는 남다른 선구안, 통찰력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고 재계는 보고 있다.
재계는 물론 정·관계, 문화·체육계, 종교계, 외교가 등 각계의 조문객들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의 제2창업자로 불려도 손색 없다"(정세균 국무총리), "우리나라 첨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신 위대한 기업인"(구광모 LG그룹 회장), "우리 나라 경제계 모든 분야에 1등 정신 강하게 심어준 훌륭한 분"(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그 통찰력이 결국 오늘날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한국 재계의 성장을 같이 한 재계의 상징"(조성욱 공정위원장), "해외 어디에 나가서도 '내가 한국인이다'라는 자신감을 주신 분"(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등 애도의 말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2세대 경영인 이건희 회장이 영면에 들며 한국 경제계 격동의 성장기를 함께 보낸 국내 '1·2세대 회장님'들의 시대도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e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