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이날 '당신은 영원한 일등이십니다'라는 추도사를 통해 "잘 있으라는 작별 말씀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는 것인가"라면서 "병상에서 일어나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다"고 애도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경제계의 큰 어른으로서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 주고 사회의 아픈 곳을 보듬어 주던 회장이었다"며 "이제는 먼 곳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니 가슴 속 깊숙이 느껴지는 비통함과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또한 "이 회장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고 분해했을 정도로 무수한 전자기기를 다뤄 일찍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며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 길은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확신을 얻고 사업을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하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기에 그룹 차원의 추진이 어렵게 되자, 직접 사재를 털어 작은 반도체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추진했다. 우리 민족은 젓가락 문화라 손재주가 좋고 주거생활에서 청결을 중요시하기에 반도체 산업에 적합하다며 가능성과 당위성을 설파했다"며 "반도체를 향한 회장님의 열정과 노력은 마침내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었다"고 덧붙였다.
먼저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해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을 발휘한 승부사라고 평가했다.
허 회장은 "1987년 4메가 D램 개발방식에서 회로를 위로 쌓는 스택으로 할 것인가 밑으로 파는 트렌치로 할 것인가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이 회장은 스택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위로 쌓는 방식이 단순하고 문제가 생겨도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시며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이후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경쟁사들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을 경험했고 이는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이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외치던 개혁가였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했다.
이에 대해 허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서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된다고 하며 장장 68일 동안 1800명의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국내에서는 일류기업일지라도 세계무대에서는 한참 뒤쳐져 있다는 냉정한 자가진단을 내리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도약해 나가자고 말했다"며 "2013년 6월엔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자리에 머물지 말고 앞서서 달려가자'고 말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는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위치가 바뀌어도 경쟁자들과 초격차를 벌이려는 이 회장의 개척정신과 일류주의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를 향한 뚝심 있는 전진은 연구개발, 우수인재 발굴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고스란히 이어졌으며, 이는 기술도 자원도 없는 한반도에 4차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세계 1위의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2차전지 같은 첨단산업을 일군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오늘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패자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호해줄 이념도 사라졌다는 이 회장의 말씀을 기억한다"며 "이제는 영원한 적과 동지도 없으며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우리 수출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헤매게 한다. 위기경영의 선구자였던 이 회장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때"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이 회장이 걸었던 길은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초일류기업을 넘어 초일류국가를 향한 쉼없는 여정이었다"며 "'2등 정신을 버려라.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말한 이 회장의 그 큰 뜻을 소중히 이어받아 일등의 길을 걸어가겠다. 이제 무거웠던 모든 짐 다 내려놓고 편안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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