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박준 작가와 함께 하는 도서정가제 이야기'서 밝혀
박준 "출판문화가 숲이라면 도서정가제는 숲의 경계선"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채식주의자'의 저자 한강 작가와 박준 시인이 최근 논란 중인 도서정가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한강 작가와 박준 시인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출판인회의 지하 강당에서 열린 '한강, 박준 작가와 함께 하는 도서정가제 이야기'를 진행했다.
한강 작가는 이 자리에서 "도서정가제가 개악될 경우 이익을 보거나, 무언가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 잃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서정가제가 개악되면) 아주 짧게는 좋을 수 있다. 책 재고처리를 할 수 있고, 책을 싸게 사고. 그렇지만 그런 잔치는 금방 지나가고 우리가 잃는지도 모르고 잃게 되는 작은 출판사들과 또 2만종이 넘게 늘어났던, 태어날 수 있었던 책들의 죽음을 우리도 모르게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강 작가는 "최대 피해자는 독자들, 그리고 독자가 될 수 있는 아직 어린 세대들이다. 너무나 큰 파장을 미치는 결정이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작가로서보다 독자로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도 작가로서보다는 독자로서 찾아왔다. 독자로서 도서정가제가 없는 세계를 겪어봤고 그게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박준 시인은 도서정가제를 숲의 경계선에 비유했다.
그는 "출판문화를 숲이라고 하면, 숲이 있는 공간에서는 선의의 경쟁 등을 통해 문화 안에서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상위 포식자와 초식동물, 그보다 작은 생물들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있는 숲"이라고 했다.
이어 "이 숲이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경계가 되는 것이 도서정가제라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를 없앤다는 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숲의 경계선을 없애고 다른 도심과 연결해 싸워서 이기라는 논리"라며 "보다 울창한 숲을 위해서는 이 경계가 끝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는 박준 시인의 비유에 이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실 정부에서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이후 1인 출판사의 지원이라든지 젊은 창작인 지원이라든지, 서점을 열어보라고 지원한다든지 등의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도서정가제를 만들어놓으니까 숲에서 풀이 절로 자라듯 1인 출판사가 늘고 독립서점이 생기고, 작가들도 다양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낼 수 있게 됐다. 도서정가제 하나로 아주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했다.
박준 시인은 도서정가제가 작가들에게 도움을 준다고도 했다.
박준 시인은 "출판계에서 신인 작가와 기성 작가를 크게 차등하지 않는 게 고유문화처럼 돼 있다. 막 등단했거나 등단하지 않았어도 책을 내는 작가가 받는 인세와 유명 기성 작가가 받는 인세가 동일하다. 이건 신인 작가든 기성 작가든 숫자의 논리를 빼고 이들의 문화적 노력을 동일하게 여기겠다는 장치로 보여진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문화적 노력은 문화적으로만 숫자는 숫자대로만 흘러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두 작가는 동네서점이 활성화되는 것에 대한 이점들을 풀어놓으며 동네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도서정가제가 유지 또는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박준 시인은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 획일화된 베스트셀러 등을 통해 평면적으로 얻을 수 있는 독서경험과 실제 서점에 가서 만져보고 살지 말지를 고민하고, 책에 대한 선택이 옳았을 때 느끼는 쾌감, 반대로 실패의 경험 등을 통해 독서, 문학이라는 걸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획일화된 평면적 독서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했다.
한강 작가는 "동네서점이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집에서 버스로 7~8개 정류장 이내 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하더라"라며 "동네서점은 큰 플랫폼들과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매대나 책장에 책을 채우는데에 전적인 자율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지만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작은 곳에 놓여있던 것도 동네서점에서는 좋은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공기 속에서 살게 되고, 책방 행사에 참여하고, 짧게는 1년에서 2년 정도 지나면 생활 패턴이 바뀌게 된다. 읽는 책의 양이 늘고 읽는 책의 종류도 바뀐다. 아직 서점이 충분히 생겨나지 않아서 겪지 못한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귀중한 기회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동네서점이 늘어나길 희망한다"고 보탰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는 이날 두 작가의 간담회에 앞서 작가 3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135명의 답변을 집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 조사참여자의 30.2%는 '도서정가제 강화'를, 39.7%는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작가 10명 중 7명은 현행 도서정가제의 유지 또는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7.1%가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도움이 되는 부분으로는 ▲가격경쟁의 완화 ▲작가의 권익신장 ▲동네서점 활성화 ▲신간증가 ▲출판사 증가 등을 꼽았다.
도서정가제는 2014년 도입 이후 법으로 매 3년마다 유지 또는 개정토록 정하고 있다. 올해는 개정안을 도출해야 하는 해이지만 마감 시한을 한 달여 앞두고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각 계 관계자가 모인 민관협의체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출판문화계는 문체부가 합의안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도서정가제를 개악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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