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거래, 경기>서울…쫓겨나는 세입자, 탈서울 가속

기사등록 2020/10/03 06:00:00

확정일자 기준 거래량…경기, 서울 추월 '7년만'

집값 급등에 임대차 수요 느는 데 매물은 품귀

전세 선호 현상에 전셋집 구해 경기로 이주행렬

신도시 등 택지 공급 예고로 이주 당분간 늘 듯

서울發 전세난, 광역화 우려…"가을 이사철, 고비"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서울의 높은 주거 물가로 인해 '탈서울'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기도의 전월세 거래량이 서울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전셋집이 가뜩이나 부족한 상황에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2법 시행 이후 더욱 귀해지면서 서울 거주자들의 이주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추석 이후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이 본격화되지만, 전문가들도 최근의 전세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새 전셋집을 마련해야 하는 수요자들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4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확정일자 기준 서울 전월세 거래량은 5만9238건으로 집계돼, 경기의 5만9764건에 역전됐다. 이 통계는 등기소와 주민센터에서 부여한 확정일자 신고를 집계한 결과다. 경기 전월세 거래량이 서울을 추월한 것은 관련 통계상 지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 전월세 시장은 최근 몇 년간 아파트 매매가격 고공행진의 영향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특히 봄 이사철을 앞두고 지난 2월 서울 전월세 거래량은 7만3712건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래 ▲3월 6만7610건 ▲4월 5만6020건으로 감소 추세를 나타냈고, 5월(5만6382건)에도 전월과 유사한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임대차2법 도입에 대한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6월 들어 6만6462건으로 1만 건 이상 전월 대비 크게 늘었다가 이후 전세 품귀 현상이 확산되면서 거래 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월별로는 ▲7월 5만9238건 ▲8월 5만3091건 ▲9월(1~28일 잠정) 4만7864건으로 3개월째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경기도 전월세 거래량은 6월 5만7357건에서 7월 5만9764건으로 서울과 달리 4.2% 증가하며 서울 거래량에 앞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서울 지역의 정주 여건 악화로 생기는 '내몰림'으로 해석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지역의 높은 주거 물가로 인해 경기로 이주하려는 수요가 그동안 꾸준했던 데다, 최근에는 서울 지역 전세 물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신규 전세 계약자의 경우 전셋집을 구하기 힘들뿐더러 자금력이 충분치 않은 경우 어쩔 수 없이 경기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 지역 전월세 거래량은 8월 들어 다시 역전됐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전망이다.

8월 기준 서울 거래량은 5만3091건으로, 경기(5만2901건)보다 다시 많아졌지만 190건 차이에 불과해 지역 간 거래량 격차가 가장 적었다. 

특히 9월(1~28일) 들어서는 경기가 4만8938건으로 서울(4만7861건)에 재역전했다. 차이도 1077건으로 벌어졌다.

전세 거래량만 놓고 보면 이미 서울에서 경기로 이주하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이 ▲7월 3만6182건 ▲8월 3만1937건 ▲9월(1~28일) 2만8483건인 반면, 경기가 ▲7월 3만7685건 ▲8월 3만2805건 ▲9월(1~28일) 2만8850건으로 3개월 연속 경기 지역의 거래량이 더 많았다. 일반적으로 세입자가 월세에 비해 주거비 부담이 낮은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이 때문에 전세 매물 부족에 서울을 등지는 수요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서울발 전세난이 경기 지역으로 도미노처럼 확산될 우려도 제기한다.

이미 정부가 8·4 공급대책을 발표한 이후 하남, 과천, 구리 등 대규모 택지 공급 예정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앞으로 3기 신도시 청약까지 최소 3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거주요건(2년 이상)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 지역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수요가 늘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 내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을 불러 전셋값 상승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감정원에 따르면 실제로 8·4 공급대책 발표 이후 한 달여 간(8월4~9월21일) 하남시 아파트 전셋값은 2.77% 상승했다. 이는 수도권 평균 상승률 1.17%의 2배 이상이다. 과천도 같은 기간 2.39%, 구리시는 2.04% 올라 평균을 웃도는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서울의 전세난이 추석 연휴 이후 시작될 가을 이사철 수요와 맞물리면서 수도권 전체 전세시장의 불안을 조성하는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전월세 수요도 함께 줄었기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989년 주택 임대차 계약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되던 1989년과 1990년에 서울 전세보증금은 23.68%, 16.17%씩 오른 이력이 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는 이번 임대차법 개정 시 전셋값 급등세에 대비해 세입자가 2년간 추가 거주할 수 있는 갱신 청구권을 함께 도입 시행 중이다.

박 위원은 "최근 재계약 증가에 따른 전세 유통매물이 감소하면서 매물품귀 심화, 4년 치를 미리 올리려는 경향으로 실거래가보다 비싼 배짱매물 급증하고 있으나 '깡통 주택'(전셋값>매매가) 우려가 커지는 등 시장의 관망세가 크다"면서 "다만 전세 품귀로 시장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으로 수요 자체도 줄어 지난 1989년과 같은 전셋값 폭등세가 나타날지도 아직까지는 판단이 어렵다"면서 "오는 가을 이사철이 임대차3법이 '찻잔 속의 태풍'이 될지, '구조적 전세난의 시발점'이 될 지를 가늠하는 풍향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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