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트라우마센터 코로나 상담, 8월 말부터 증가
4월 거리두기 강화때도 늘어…9월1일 하루 5천건
'코로나 블루' 경험자 35.2%…심리방역 중요 84.6%
"일반인 심리상담 체계 부족…'컨트롤타워' 부재도"
"심리방역 지원 정책·예산 확보 시급…전문성 필요"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심리 상담 체계가 강화돼야만 불안감, 외로움, 스트레스 등으로부터 심리방역이 무너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코로나19 관련 상담 건수는 누적 43만8840건이다. 이 가운데 확진자와 가족 상담이 2만807건(4.7%), 자가격리자 및 일반인 상담이 41만8033건(95.3%)이다.
자가격리자·일반인 대상 상담 건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됐던 4월에 가장 많았고, 거리두기 완화 이후에는 점차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상담 건수는 ▲2월(1월29일~2월28일) 9456건 ▲3월 5만8501건 ▲4월 8만4643건 ▲5월 6만1140건 ▲6월 6만8424건 ▲7월 6만2347건 ▲8월 6만1276건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 이후 거리두기 조치가 강화되면서 자가격리자 및 일반인 상담 건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 15일을 전후로 하루 평균 상담 건수를 분석한 결과 8월 초·중순(1일~14일) 2334건에서 8월 말(18일~31일) 3793건으로 61.5% 늘어났다. 특히 지난달 28일 하루에 4457건, 이달 1일엔 4986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시장조사기관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7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35.2%가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73.2%는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답했으며, 69%는 많은 사람이 일상 행위에도 날카롭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응답했다. 심리방역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도 84.6%에 이른다.
상담 내용에 대해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상담서비스 초기엔 '코로나19가 치료될 수 있을까' 등의 불안감을 호소하는 상담자가 많았지만,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재발 우려, 전염 가능성, 외로움 등의 상담 건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심리적 고통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행이 1~2년 이상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 우울증은 전 세계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정신건강 담당부서 책임자인 데버러 케스텔은 지난 5월14일 "격리, 공포, 불확실성, 경제적 혼란은 모든 국가에서 심리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며 "정신건강과 복지가 코로나19 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으며, 이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우선 과제"라고 경고했다.
심리학·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은 오랜 거리두기로 활동이 줄어들고, 스트레스가 축적되면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전덕인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풀려면 두 가지 요소가 모두 필요하다. 자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행동이 필요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배출할 수 있는 행동도 중요하다"면서도 "거리두기로 생활이 제한되고, 집에만 머물게 되니 두 가지 요소를 풀어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집에서도 자주 움직일 수 있도록 '홈 트레이닝'(홈트) 등 할 수 있는 활동을 많이 권고하지만, 사실 오랜 기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엔 역부족"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트레스 관리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들의 재난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지역 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권역별, 지역별 정신건강센터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서울에 컨트롤타워인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있지만, 지방 주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선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국가트라우마센터(02-2204-0001~2, 영남권트라우마센터(055-270-2777),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 등에서 전문 상담을 진행 중이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3월부터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특별대책위원회와 함께 전문 심리상담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권역별로 재난 트라우마 치료를 담당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정작 지역 주민들의 트라우마, 우울증을 가까이서 치료해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자체나 보건소에서 운영 중인 정신보건센터 상황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임 교수에 따르면 보건소에서 정신과가 차지하는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는 "일반인들의 심리 상담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심리방역 대책이 그간 부족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방역 구호를 내세우긴 했지만, 문제가 터지면 그제서야 조치하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며 "예전 세월호 사건 이후로 지역 주민들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센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크게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힘들다면 빨리 전문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 상담 전문가를 연결해줄 수 있는 조치도 좋지만, 심리치료 지원 정책과 예산이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며 "의료진과 마찬가지로 많은 상담사가 자원봉사를 해 왔지만, 장기화되면 열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도 "국가가 주도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상담사들을 키우고 관리해 다양한 방면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ungs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