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황남동 고분 발굴 현장 연구원들 설명
국민, 2800여명 실시간으로 참여 소통 긍정 평가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이런 것 너무 좋아요. 진짜 재밌어요.", "오 너무 신기해요.", "코로나로 '집콕' 중인 학생들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초1 아이가 보면서 발굴 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많이 가지고 흥미롭게 보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시국에서 문화재청이 최초로 시도한 유물 발굴 현장 온라인 설명회는 가히 성공적이라 할 만했다.
3일 오후 2시 문화재청은 경주 황남동 고분 발굴 현장 온라인 설명회를 열었다. 최대 2800여명의 국민이 실시간으로 참여,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설명회는 국민들이 쏟아내는 질문사항 중 간단한 질문은 문화재청과 발굴조사 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댓글로 답변해주는 한편 주요한 질문은 김권일 신라문화유산 선임연구원이 설명회 말미에 답해 줬다.
이번 온라인 설명회는 발굴된 유물만큼이나 최초의 의미가 크다.
문화재청이 발굴 현장을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최초의 사례이면서 언론과 일반 대중에게 동시에 설명회를 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언론에 먼저 설명회를 진행하고, 뒤이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왔다.
설명회의 주인공은 황남동 120-2호분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금동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 등 피장자(무덤에 매장돼 있는 사람)의 착장품 일식(풀세트) 한 번에 출토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이러한 사례는 1973년∼1975년 경주 황남대총이 유일해 문화재청이 45년 만에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하다. 또한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무덤에 매장돼 있는 사람)가 신발을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피장자(무덤에 매장돼 있는 사람)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를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는 문화재청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이현태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추진단 연구사는 "금동이나 은은 공기와 접촉하면 부식 속도가 빨라진다. 바스라져 버린다. 그런 걸 방지하기 위해 보통은 유물을 발견하는대로 수습한다. 그러다보니 피장자의 장신구 착장 상태를 함꼐 노출시키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저희가 이를 위해 일부러 유물들을 발견할 때마다 임시 보존 처리하면서 작업을 했다"고 그 의미와 과정을 설명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이외에도 김권일 연구원은 ▲소형분임에도 중·대형분에 출토되는 최고위계의 착장품이 대부분 출토됐다는 점 ▲금동관과 금동관모가 함께 출토됐다는 점(새로운 형식의 금동관일 가능성) ▲500점 이상으로 구성된 초소형 구슬팔찌를 착장한 점 등을 이번 연구의 의미이자 성과로 꼽았다.
그는 "이 무덤은 신라 무덤 중에서는 굉장히 작은 소형분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라 최고 위계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착장품들이 대부분 출토됐다. 120, 120-1, 120-2 3개의 고분을 조사하고 있다. 120호분이 있는 상태에서 두 기를 추가로 만들었기 때문에 혈연이라든지 가까운 관계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피장자의 성별과 신분을 가장 궁금해했다. 성별의 경우 인골이 출토되면 성분 분석을 통해 성별을 구분할 수 있지만, 이번처럼 인골이 없는 경우는 유물로 성별을 판단한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기준으로 유물의 성별을 구분한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기준은 ▲작은고리귀걸이가 출퇴되면 남성, 큰고리귀걸이가 출토되면 여성 ▲큰 칼이 있을 경우 남성, 없는 경우 여성 ▲방추차(가락바퀴)가 출토되면 여성, 없으면 남성 등이었다.
그는 "어떤 연구자는 청돌다리미 출토 여부를 여성의 기준으로 보기도 한다"며 "이렇게 보면 120-2호는 큰고리귀걸이가 출토된 점, 큰 칼이 없는 점, 방추차가 출토된 점, 청동다리미가 출토된 점으로 보아 여성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분은 최고위계의 신분으로 볼 수 있다. 왕족 범위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20-2호분은 왕족이거나 귀족층 중 최고 신분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설명회를 시청한 국민들은 피장자의 키가 170㎝로 당시로는 상당히 큰 키였다는 점을 놀라워하면서, 김 연구원에게 발굴 당시의 심정을 묻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내가 발굴 인생에서 이러게 중요한 유적을 발굴하는구나 하는 고고학자로서 큰 영광과 설렘을 느끼는 동시에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고 답했다.
이번 설명회는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보기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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