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 '페이루즈'…레바논 통합의 상징
외교관을 총리로 앉힌 헤즈볼라에 경고?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을 맞은 중동 국가 레바논을 1박2일 일정으로 다시 방문했다. 지난달 대규모 폭발 참사 직후 수도 베이루트를 찾은 뒤 약 한달 만의 재방문이다.
31일 레바논에 도착한 마크롱 대통령이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은 새롭게 임명된 총리, 시민사회 운동가도 아닌 현지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성 디바 '페이루즈(85)'였다.
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약 1시간 동안 페이루즈의 자택을 방문해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페이루즈는 "레바논이 꿈꾸고, 사랑한 것들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레바논의 국민 여가수인 페이루즈는 최근 몇 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페이루즈의 목소리는 1990년까지 약 15년을 이어온 내전 기간 동안 레바논의 국민에 위안이 되어 왔다. 특히 그의 노래 '레바논을 위하여'는 최근 베이루트 폭발 사고 후에도 곳곳에서 흘러나오며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폭발 사고가 벌어진 이틀 후인 6일 레바논을 방문했다 돌아가며 페이루즈의 노래 제목인 '사랑해 레바논'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게시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첫 일정을 놓고 현지 여론은 크게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대중들은 페이루즈를 직접 만나는 마크롱 대통령이 "부럽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게시했다. 그러나 일부 활동가들은 "이는 레바논에 대한 모욕"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레바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AFP통신은 페이루즈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일정이 레바논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레바논은 18개 종파가 얽힌 복잡한 권력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으로 임명한다.
레바논은 31일 무스타파 아디브(48) 독일 주재 대사를 신임 총리로 지명했다. 대중 인지도가 매우 낮은 직업 외교관 출신 인사를 행정부 수반으로 발탁한 것이다. 레바논 여권은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가 주축 세력인데 사실상 이들이 정치적 입지가 약한 인사를 총리로 앉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베이루트 항구에서 큰 폭발 사고 이후 레바논에서는 부패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헤즈볼라 세력이 아디브 신임 총리를 앞세워 그들의 입맛에 맞는 개혁을 이행할 가능성도 크다.
마크롱 대통령이 기독교인인 페이루즈를 만난 것 역시 이같은 계산을 바탕으로 프랑스는 헤즈볼라가 내세운 새로운 총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레바논은 1920년부터 23년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지금도 다양한 경제적 원조와 정치적 관계를 통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1일 베이루스 폭발 참사 현장을 방문해 "레바논이 정치 개혁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CEDRE(레바논 국제지원그룹) 자금을 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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