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과 양제츠, 부산서 6시간 마라톤 회동
양제츠, 미중 관계 현황과 중국측 입장 설명
방한 선물과 함께 '청구서' 내밀었을 가능성
서훈 "미중 공영·협력이 세계 평화에 중요"
구체적 내용 거론 없이 원론적 입장만 공개
中에 적극 동의보단 韓 입장 이해 구했을 듯
양 위원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22일 오전 부산 시내 한 호텔에서 5시간50분에 걸쳐 회담과 오찬 협의를 진행했다. 이날 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협력, 고위급 교류 등 한중 관심 현안, 한반도 문제와 국제 정세 등 폭넓은 이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서 실장은 회담 직후 취재진과 만나 "오늘 많은 시간을 모든 주제를 놓고 충분히 폭넓게 대화를 나눴다.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평가했다. 양 위원 역시 "오늘 충분하게, 아주 좋게 이야기를 나눴다"며 "과거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대화했을 때도 4~5시간 정도 했다. 새로운 카운터파트인 서 실장과도 꽤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특히 이번 회동이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뤄지면서 양 위원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라는 선물과 함께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달라는 '청구서'를 함께 내밀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한국 방문에 앞서 양 위원은 싱가포르 방문에서 싱가포르 및 아세안 회원국과의 협력 강화를 강조하면서 우호적 제스처를 취했다. 아울러 "경제 세계화와 국제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려 한다"며 미국 견제에도 나섰다.
싱가포르와 한국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이면서도 중국과 교류가 활발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 국가들이 결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약한 고리'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우군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날 6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동에서도 미중 갈등 현안이 깊이 있게 논의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구체적인 현안을 거론하지 않은 채 원론적인 입장만 공개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양제츠 위원은 최근 미중 관계에 대한 현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했고, 서훈 실장은 미중 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양 위원은 이날 대만·홍콩·신장 문제는 중국의 주권이자 내정이라고 설명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경제번영네트워크(EPN), 화웨이 배제 등 미국의 반중(反中) 행보에 불만을 표하고,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최소한 중립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체 연료와 사거리 제한을 푼 한미 미사일 개정 지침이나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시도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에 대해 서 실장은 '미중간 공영과 우호 협력 관계'라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입장에 동의하기보다는 현안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중은 경제 현안과 관련해 ▲FTA 2단계 협상 가속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연내 서명 ▲제3국 시장 공동진출 ▲신남방·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계협력 시범 사업 발굴 ▲인문 교류 확대 ▲지역 공동방역 협력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 등 다자 분야 협력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폭넓은 공감대를 이뤘다.
특히 양국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돼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조기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양 위원은 "한국이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라고 재차 확인했다. 다만 한중이 기존에 언급했던 '연내'라는 표현을 제외하고, 방한 시기 등 구체 사안에 대해서는 외교당국 간에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서로 곤혹스러운 부분들은 깊이 들어가지 않았고,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해 두루 논의하되 우호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탐색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이 시 주석의 방한을 긍정적으로 답하긴 했지만 외교적 화법으로 한중 관계 증진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짚었다.
김 소장은 "복잡하고 미묘한 외교안보 상황을 진전시킬 수는 없지만 실리 차원에서는 양국 관계가 경제 협력을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한 협력이 가능하고 안정적인 관계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며 "사드 국면으로 제약된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분위기가 전환됐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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