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 연상시키는 북한
패권다툼하는 미중 사이 끼어들며 이례적으로 중국 적극 지지
북한과 중국, 역사적으로 냉(冷)·온(溫)관계 반복
공산진영 붕괴 직후 1992년 한중수교, 김정은 집권 초반 핵 집중 개발 등이 전환점
2018년 북미, 남북 정상회담 열리며 다시 훈훈한 관계로 변화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 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오늘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요즘 북한이 사사건건 중국편을 들면서 미국을 향해 쌍심지를 켜는 일이 잦습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같은 공산당 국가니까 당연한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겁니다. 뭔가 상당한 전략전술적 계산을 깔고 하는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북한의 속내를 짚어 보겠습니다.
3일전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남중국해를 지배하려는 중국에 강하게 맞서겠다고 밝히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러자 하루 뒤 중국 외교부가 폼페이오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지요. 여기까지는 분쟁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니 특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이 불쑥 끼어들어 중국보다 더 심하게 폼페이오를 비난했습니다. 외무성의 공식 담화로 “남의 일에 때없이 끼어들어 소음공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폼페이오를 공격한 겁니다. 중국이 폼페이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과 비교해보면 북한의 반응이 훨씬 더 감정적입니다. 중국이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욕설을 북한이 대신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제정하면서 생긴 미중간의 갈등에서도 북한은 철저히 중국 편을 들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지재룡 중국주재 북한대사가 중국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이 홍콩 문제에 간섭한다”고 비난했지요. 이틀 뒤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홍콩보안법 제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중국 유엔대사에게 보냈습니다. 또 신장 지역에서 위구르족을 탄압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적극 옹호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문제로 미국이 중국에 시비를 거는 것을 의식한 듯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찬양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이 중국을 비판할 때마다 앞장서서 방패막이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선 입안의 혀처럼 행동하는 북한이 정말 예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미국을 향해 쌍심지를 켜는 모습에서 20세기 냉전시대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전세계가 공산권과 자본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치열하게 맞서던 시절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냐는 뜬금없는 생각이 얼핏 머릿속을 스칩니다.
당시는 미소 사이에서 공산권은 소련을, 서방은 미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진영논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던 시절이었지요. 북한이 중국을 한사코 옹호하는 오늘의 모습은 바로 20세기 냉전시대의 진영 논리를 빼다 박은 모습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자기 아들이 전사하는 걸 감수하면서 북한을 구해준 마오쩌둥이지만, 김일성은 마오쩌둥이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마오쩌둥이 김일성을 배신자로 부르기도 했지요. 60년대에는 중국과 소련이 공산권 진영 주도권 다툼을 벌이자 북한은 중국 편에 섰습니다. 그러면서 소련이 중단한 경제 지원을 중국에서 받아냈습니다. 70년대 초에는 마오쩌둥이 김일성의 대남 무력통일 노선을 비판하면서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어찌 보면 찻잔 속의 태풍 식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자 북한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2년전 공산진영의 맹주이던 소련이 무너진 뒤 한국과 수교한 것도 충격이었습니다만, 한중수교는 북한이 지도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한중수교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후 중국과 북한은 서먹서먹한 관계를 최근까지 이어갔습니다.
2015년 중국의 천안문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귀빈 대접을 받은 데 비해 북한은 한 구석에 쭈구리고 있는 찬밥신세였습니다. 특히 2017년에 양국관계는 험악한 지경까지 치닫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2012년 집권하면서 핵개발에 전력투구했고, 이것이 한반도에 긴장을 불러 일으키자 중국이 유엔 제재에 동참합니다. 그러자 북한은 중국을 향해 험한 말을 쏟아내며 섭섭해하는 감정을 있는 대로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17년까지 핵무기 개발을 거의 완성한 북한이 2018년 들어 미국과는 핵협상에, 한국과는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면서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트럼프를 만나러 싱가포르에 가는 김정은에게 중국이 시진핑이 타는 전용 비행기를 내준 일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큰 이유였기에 중국도 북한을 압박할 수밖에 없었지만, 북한이 미국과 핵을 포기하는 문제를 협상하겠다는데 있는 힘껏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렇지만 북한과 미국의 핵협상은 속절없이 깨져 버렸습니다. 북한이 처음부터 협상을 깨 버릴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김정은은 미국과 협상을 하면서 얻어낸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 제재를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스스로도 이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우리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30대 신참내기가 60대,70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초강대국 지도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이 전세계에 각인됐습니다. 명실상부한 국제적 지도자 반열에 오른 겁니다. 북한 말을 빌자면 탁월한 정치 실력을 발휘해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된 겁니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정권을 잡은 김정은으로선 이보다 든든한 뒷배를 달리 찾을 수 있을까요? 북한에 섭섭하게만 대하던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을 애지중지하게 만든 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정은은 아직도 불안한 모양입니다. 한달 전 개성공단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건 북한이 우리와는 더 이상 잘 지낼 생각이 없다는 걸 있는 대로 보여주려는 패악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와 잘 지내다 보면 북한 주민들이 풍요롭게 사는 남녘 동포들을 부러워하게 되겠지요. 젊은 새 지도자가 나타나서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탁월한 정치 실력을 발휘한다는데, 우린 세끼 밥도 먹지 못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생각만 해도 뒷목 솜털이 곧추서는 일은 아닐까요?
코로나 19 사태로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고 남북관계도 철저히 차단하면서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것도 불만이 커지는 걸 억누르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와중에 미국이 중국을 마구잡이로 공격하고 나선 겁니다. 김정은으로선 마침 잘된 일일지 모릅니다. 적어도 중국이 미국이나 한국과 잘 지내라고 압박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테니 말입니다. 이번 기회에 중국과 미국이 아예 갈라서서 옛날의 냉전구도가 되살아난다면 북한은 한결 편해질 겁니다. 중국이 북한 뒷배를 철저히 봐줄 테니까 말입니다.
지금 분위기로 봐선 냉전구도가 되살아나는 게 환상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중국을 대신해 미국을 비판하고 나서는 건 그런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냉전구도가 형성된다면 북한과 김정은 체제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 말입니다. 김정은은 이런 상태가 한 20년 이어진다면 자신의 권력이 절대 무너지지 않을 반석 위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지 모릅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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