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공연을 위해서라도 '스탠드-바이(Stand-by)'
국립극단·서울예술단, 민간과 상생 도모
지난 23, 24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드레스 리허설을 한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명불허전이었다.
고선웅 극공작소 마방진 예술감독의 연출로 2015년 초연한 작품. 각색의 귀재로 정평 난 고선웅이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조씨고아(趙氏孤兒)'를 각색·연출했다.
조씨 가문 300명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삭의 아들 '조씨고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하게 되는 비운의 정영이 중심축이다. 원나라의 대표 연극 형식인 잡극(雜劇) 형식을 차용해 비워낸 무대를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가 가득 채운다.
"그리 말하지 말게. 자식을 버리는 내 심정은 오죽하겠나." 정영을 수백번 연기했을 배우 하성광의 눈시울은 여전히 붉어졌다. 정영의 처를 연기하는 이지현도 "그 약속이 뭐라고. 그 의리가 뭐라고. 그 뱉은 말이 뭐라고"라며 지금도 극한의 감정으로 울부짖는다.
24일 드레스 리허설에는 조씨고아와 한궐 역에 각각 새로 합류한 홍사빈과 김정호이 이 수작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예정대로라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5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네 번째 공연의 막을 올려야 했다. 이미 티켓 예매에서 예정한 28회 회차의 티켓이 모두 팔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한 것을 감안해도, 민감한 시국에 스타 배우가 나오지 않는 연극의 한달 분 티켓이 하루 만에 모두 팔려나가는 것은 이례적이다. 예매하려는 관객들이 몰린 탓에 한 때 국립극단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코로나19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방역 강화조치' 무기한 연장에 따라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관객들 예매 티켓은 모두 취소됐다. 이번 드레스 리허설을 본 관계자와 미디어들 사이에서는 "좋은 공연을 혼자 보기 아깝다. 더 많은 관객이 보지 못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국립극단을 비롯 국공립극장들은 정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공립 공연장의 공연 취소·재개가 반복되자 유연한 대처 방식이 나오고 있다. 단발성 또는 공연 기간이 짧은 클래식음악, 무용, 국악 공연에 비해 연극, 뮤지컬은 공연 일수가 긴 편이다.
이로 인해 국립극단처럼 코로나19 관련 상황이 나아져 단 하루라도 공연할 수 있는 날이 생기면 실행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만반의 준비를 하는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공연이 재개되면 온라인 상연은 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무대 셋업과 연습 모두 정상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와 이언시 스튜디오도 지난 24일 막을 올려야 했을 연극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을 전면 취소하지 않고 있다.
당일 발표되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확진자 수가 한 자리일 경우 공연을 진행한다. 공연 예정 마지막날인 내달 5일까지 공연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에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남산예술센터는 "창작진들은 모두의 안전을 위한 거리두기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관객과 처음으로 만나는 무대와 우리의 일상인 연극을 바로 멈출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카시아와, 아카시아를 삼키는 것'은 공연을 상황이 허락하는 날에 바로 '온 스테이지(On stage)' 할 수 있도록 '스탠드-바이(Stand-by)' 하겠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공연계의 어려움이 극심해지가 국립극단과 서울예술단처럼 민간과 상생하는 국공립예술단체도 생겨나고 있다.
국립극단은 코로나19 극복 프로젝트 '다시 연극이 있습니다'를 펼친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취소된 작품 세 편을 11~12월에 초청하는 프로젝트다.
선정된 공연팀에게는 제작비 3000만원이 지원된다. 국립극단이 운영하는 공연장(소극장 판)을 2주간 제공한다. 티켓 판매 수입 또한 선정팀에 전액 귀속되며, 주요 홍보물 제작을 포함한 홍보·마케팅도 지원받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취소뿐 아니라 객석 내 관객 입장이 제한, 무관중 온라인 송출을 한 경우에도 지원할 수 있다. 공모기간은 내달 7일까지다.
이번 상영은 기본적으로 무료였지만 영상관람 중 '후원하기' 기능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책정한 금액으로 공연에 대한 감동을 전하게끔 했다.
네이버TV 13만1925뷰(동시 접속자수 2862명), V라이브 1만4621뷰로 총 14만6546뷰를 찍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후원자수가 228명으로 후원금액은 219만1089원을 기록했다. 평균후원금 9610원, 후원최고액은 10만1000원이었다.
최근 '방탄소년단', '슈퍼엠' 같은 인기 K팝 아이돌 그룹들이 온라인 유료 콘서트의 가능성을 봤는데 공연업계에서는 서울예술단이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서울예술단은 이번에 자발적인 후원티켓을 구매의 형태로 모인 후원금과 지난 5월 25일 네이버TV를 통해 진행한 온라인 갈라콘서트 '스팩콘(SPACON)'에서 얻은 후원금을 합쳐 민간을 지원한다. 네이버에서 1:1 매칭으로 지원금을 더해 국내 민간예술단체의 공연 영상제작 지원금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이미 영국 국립극장 NT라이브의 스트리밍 공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잘 알려진 영국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기존 공연을 온라인 스트리밍한 유튜브 채널 '더 쇼 머스트 고 온'은 무료로 영상을 공개하고 자발적 후원금을 받아 호응을 얻었다.
'채널SPAC'을 통해 공연장뿐만 온라인에서도 관객을 만나온 서울예술단은 "이번 영상상영을 통해 극장공연과 공연영상 상영의 연계 고리를 강화하고, 공연 영상제작, 온라인 플랫폼 구축 등 향후 공연영상 유료화 서비스를 위한 단계적 시도들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립극단과 서울예술단을 비롯한 국공립단체들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개설 등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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