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작년 4월 정상회담서 50억 달러 거론"
"6월엔 北 위협 거론, 주한미군 철수 영향 언급"
"주한미군 철수 위협, 효과적 협상 카드로 인식"
주독 미군 감축 추진 상황서 주한미군 연계 우려
미국 내 슈퍼 매파인 볼턴 전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기술한 만큼 저서의 언급과 해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건 무리다. 다만 협상 초기 미국이 뜬금 없이 50억 달러를 요구했던 배경과 의도를 가늠할 수 있는 데다 최근 미국의 주독 미군 감축 행보와 맞물리면서 향후 방위비 협상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외교부는 볼턴 회고록에 대한 별도 논평을 내지 않은 채 방위비 분담 협상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파장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출간된 볼턴 전 보좌관의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 : 백악관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소요 비용을 50억 달러라고 설명하고 무역 부문에서 미국이 연간 40억 달러 적자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한국 보호 비용이 5조 달러이며 한국이 미국의 보호로 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무역 불균형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 보호를 명목으로 주한미군이 40억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고 회고록에 기록했다. 이어 북한 위협을 제기하며 주한미군 철수 시 부정적 영향을 언급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해 7월 한국과 일본 순방을 마친 후 방문 결과를 보고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방위비 인상을 주장했다고 기록했다. 그는 "대통령은 (한국에서) 50억 달러, (일본에서) 80억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미군 철수로 위협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면 강력한 협상 위치에 있게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둔미군 철수 위협을 가장 효과적인 협상 카드로 인식하고 참모들에게 언급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보고를 들으면서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상기하면서 활용하라는 언급을 했다고 주장한 대목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을 발사한) 지금이 돈을 요구할 좋은 시기"라고 발언했다고 적었다.
협상 초기 미국이 요구했던 50억 달러가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으며 산정 근거가 없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볼턴은 동맹국과 방위비 분담 산출 공식은 별도로 정해진 것이 없으며 주둔 비용 산출은 미 국방부에서 회계 기술 조작으로 충분히 조절 가능하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만한 방위비 분담 수준은 본인 외에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진행 중인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은 한미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9개월째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이 협상 초기 지난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6배에 달하는 50억 달러를 제시하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다가 한미가 지난 3월 13% 인상안에 잠정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타결이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13% 인상안을 마지노선으로, 미국은 13억 달러를 언급하며 특별한 모멘텀 없이 협상이 장기화되고 있다.
사실상 해외 주둔 미군 감축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래된 구상이다. 문제는 방위비 협상이 지연되면서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이 주독 미군 감축을 추진하며 다른 지역으로 미군 감축이나 재배치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백악관 캐비닛룸 원탁회의에서 주독미군 감축 관련 질문에 "(주둔 병력) 숫자를 2만5000명으로 줄인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는 독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많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라고 불특정 다수 국가에서도 주둔 미군 감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 미국 대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미군 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독일뿐만이 아니라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한국, 일본에서도 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금까지 방위비 협상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으며 한미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을 위한 주한미군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서 확고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원칙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재배치를 지렛대로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방위비 분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을 때 주한미군과 연계해서 이야기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며 "방위비 분담에 임하는 전략이나 원칙은 합리적이고 공평한 분담,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 원칙을 가지고 임해 왔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부 역시 그리넬 전 대사의 언급 이후 "양국 간 논의된 사안이 없다"며 "매년 열리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도 주한미군의 역할을 평가하고 계속 유지될 것이란 공약을 재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방수권법을 통해 주한미군을 2만8500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감축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으로 향후 주한미군 감축을 위해선 미 의회 설득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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