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연패의 시작은 지난달 23일 NC 다이노스전이었다. 에이스 드류 루친스키를 만난 한화는 타선의 침묵 속에 0-3으로 졌다. 좌완 영건 김민우가 5⅔이닝 2실점으로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때만 해도 한화가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이어 역대 두 번째 18연패의 오명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전력의 양극화가 극심했던 1980년대와 달리 현재 프로야구팀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 평준화됐고, 무엇보다 한화가 20경기 가까이 내리 패할 전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화는 경기를 치를 때마다 어김없이 패배를 쌓아나갔다. 마운드와 타선이 모두 부진하거나 간혹 어느 하나가 잘 돌아가면 다른 하나가 침묵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막판까지 힘겨루기를 하다가 물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찌감치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기 일쑤였다.
17연패까지는 가는 동안 쌓인 각종 지표들은 한화의 기댈 곳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17경기의 평균자책점 8.19는 10개 구단 중 단연 최악이다. 선발 마운드는 외국인 에이스 워윅 서폴드외에는 믿을 만한 투수를 찾기 어려웠다.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출발이 늦어진 좌완 채드벨은 정상 컨디션과 거리가 멀었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베테랑 장시환의 구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같은 기간 팀 타율은 0.209에 불과하다. 출루율 0.270도 웬만한 팀의 타율에 못 미친다. 잔루가 99개로 가장 적었다는 점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일조차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급기야 수장이 바뀌는 최악의 상황까지 겹쳤다. 한용덕 감독은 지난 7일 NC전에서 2-8로 패한 뒤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한화 창단 후 단일 시즌 최다인 14연패를 당한 날이었다.
부랴부랴 지휘봉을 잡은 최원호 감독대행은 파격적인 선수 이동으로 반전을 꾀하려 했다. 부임 직후 송광민, 이성열, 최진행, 김문호 등 무려 10명의 1군 선수를 2군으로 내려 보낸 최 감독대행은 그동안 지켜봤던 유망주 9명으로 빈자리를 채웠다.
결과적으로 이는 실패로 귀결됐다. 긴 연패로 축 처진 분위기에서 어린 선수들이 제기량을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방을 쳐줄 베테랑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간혹 찬스가 찾아와도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7승9패였던 성적이 7승27패로 바뀐 것과 가을야구 경쟁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이들에겐 더 이상 큰 고민거리가 아니다.
당장 13일 경기에서 패한다면 어쩌면 깨지지 않을 수도 있을 첫 번째 19연패 팀이 될 수도 있다.
한화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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