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역사의 과오'…美·유럽 인종주의자 동상 끌어내려(종합)

기사등록 2020/06/12 12:04:22

남부연합 대통령 '데이비스' 동상 훼손

伊 '로마 제국사' 저자 동상도 철거 논의

벨기에·네덜란드 식민주의자도 재평가

[세인트폴=AP/뉴시스]미국 미네소타 세인트 폴에서 10일(현지시간)  미 대륙을 발견한 인물로 평가받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의해 끌어내려져 나뒹굴고 있다.  2020.06.11

[서울=뉴시스] 양소리 기자 =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인종주의 역사 청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신대륙의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에 이어 남부연합의 대통령과 부통령을 지낸 제퍼슨 데이비스의 동상이 잇따라 훼손됐다.

영국에서는 노예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던 1800년대 정치인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동상이, 이탈리아에서는 식민지의 여아를 성노예로 삼은 언론인이자 역사가 인드로 몬타넬리의 동상을 시위대가 끌어내렸다.

AP통신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州) 리치먼드의 그랜드 모뉴먼트 애비뉴에서는 시위대가 2.4m 높이의 데이비스 동상을 밧줄로 묶어 넘어뜨렸다. 데이비스는 노예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며 폐지는 각 주(州)의 주권에 맡겨야 한다고 제창했던 인물이다.

리치먼드 시의회는 이미 지난 8일 모뉴먼트 애비뉴에 있는 과거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기념물 4개를 철거하는 방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한 뒤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주지사의 철거 명령에도 사법부에서 "10일 후 철거하라"며 유예기간을 두자 시위대는 이날 그들의 손으로 '직접' 동상을 끌어내리는 편을 택했다. 동상이 쓰러지자 시위대는 환호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시위대를 지켜볼 뿐 특별한 제지를 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한 주민은 "이같은 (인종차별적인) 기념물이 이 도시의 중심에 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사라진 동상이 있던 자리를 분수, 정원 등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콜럼버스의 동상도 잇단 공격을 받았다. NBC에 따르면 매사추세츠주는 이날 오전 목이 잘려나간 콜럼버스의 석상을 철거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있던 이 석상은 전날밤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됐다.

유럽인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는 백인 우월주의와 원주민 혐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리치먼드=AP/뉴시스] 11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州) 리치먼드의 그랜드 모뉴먼트 애비뉴에서는 시위대가 2.4m 높이의 데이비스 동상을 밧줄로 묶어 넘어뜨렸다. 사진은 동상이 사라진 기념비 앞에 받침대만 남은 모습. 주변은 페인트로 지저분하게 낙서가 되어있다. 2020.6.12.


이탈리아에서는 '로마 제국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몬타넬리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간 코리엘레 델라 세라에 따르면 반(反)파시스트 사회단체 '밀라노의 파수꾼(I Sentinelli di Milano)'은 "몬타넬리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했던 당시 12살 소녀를 신부로 들여 성노예로 삼았다"며 시 당국에 철거를 요청했다.

몬타넬리는 당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 "나는 당시 군인 신분으로 에티오피아에 있었고, 이는 그 지역의 관습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세기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린 영국에서는 노예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던 정치인 윌리엄 글래드스턴 전 총리의 동상 철거 논의가 시작됐다.

BBC에 따르면 글래드스톤의 증손자는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동상을 철거하는 민주적인 결정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래드스톤 전 총리는 민주적인 변화를 위해 지칠 줄 모르던 정치인이었다. 그 역시 자신의 동상이 철거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글래드스톤은 말년에 노예제 폐지와 관련해 "민중은 옳았고, 엘리트들이 틀렸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브뤼셀=AP/뉴시스]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가 열려 벨기에 국왕 레오폴트 2세의 동상에 '수치'라는 글자가 뿌려져 있다. 레오폴드 2세는 과거 아프리카 콩고에서 잔혹한 식민 통치를 펼쳐 그의 재임 기간 중 수많은 콩고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2020.06.08.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는 옛 국왕인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페인트와 낙서로 훼손됐다. 앤트워프시는 지난 9일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 쓴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을 철거하기도 했다.

레오폴드 2세는 17세기 아프리카 콩고(콩고민주공화국)을 자신의 소유지라고 주장하며 수백만명의 원주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고 잔혹하게 학살했다.

네덜란드 시위대는 식민주의 창시자 중 하나인 얀 피터르스존 쿤의 동상의 손에 붉은 페인드를 칠했다. 네덜란드 현지 매체는 서부 호른에 위치한 그의 동상이 낙서로 훼손됐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관료였던 그는 인도네시아 등을 침략하고 식민지 경영을 실행, 국가에 거대한 부를 안긴 인물이다. 인도네시아 총독을 맡았던 그는 인도네시아 주민들에 대한 '소유권'을 행사하며 "가축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주인의 재산"이라는 잔혹한 사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이날 남부연합군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군 기지나 다른 자산의 이름을 바꾸도록 의무화하는 연례 국방정책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개정안을 제출한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우리 군사 시설에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헌사를 끝낼 때는 한참 지났다"며 이름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oun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