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영국화가가 그린 이순신 초상화?

기사등록 2020/06/11 06:00:00 최종수정 2020/06/11 07:26:47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수집가 송영달 명예교수 발굴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에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실어

미술사가 이태호 "배경 거북선 19세기말 양식..이순신 초상 아냐"

[서울=뉴시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완전 복원판에 실린 이순신 장군 초상화는 (추정)이라는 말도 함께 써있다. 사진=책과함께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최근 출간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의 완전 복원판에 '이순신 초상화' 추정본이 실려 주목받고 있다.

책 6쪽과 299쪽에 실린 가로 55㎝, 세로 77㎝ 크기에 그려진 수채화다. 그림속 주인공은 조선 시대 군인들의 복장인 융복을 입었고, 머리에는 하얀 새털이 달린 전립을 썼다. 똑바로 뜬 치켜진 눈과 강팍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상상하던 온화한 이순신 장군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 생소하지만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의 이력때문에 화제다.

키스는 100년전 우리나라를 찾아온 '한국을 사랑한 목판화의 대가'로 알려져있다.1919년부터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우리의 문화와 일상을 수채화로 그렸다. 1919년 겨울 도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전시했다. 이때 신판화 운동에 앞장선 출판인 와타나베 쇼자부로(渡庄三)를 만난 이후 목판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21년 서양인 화가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1934년에도 열었다. 1920년대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키스의 '이순신 장군 초상'은 키스 작품 수집가이자 연구자인 송영달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 명예교수가 발굴해 지난해 국내에 알렸다.

이번에 키스의 '올드 코리아'를 '완전 복원판'으로 옮긴 송 명예교수는 이 책에 이순신 초상화 발견과 입수 경위에 구체적인 근거를 밝혔다.

"푸른 옷을 입은 무인의 그림은 유난히 커서 두 번을 접어두었기에 종이가 구겨지고 금이 있었다. 키스가 남긴 수채화는 목판화보다 조금 큰 것도 있지만 대개 목판화 크기다. 수채화는 유화에 비해 보존이 어려워 웬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보관중에 손상되기 십상이다. 한국을 방문한 몇몇 화가의 그림도 거의 없어졌다. 지금껏 키스 말고 다른 서양인 화가들의 그림도 찾아보았지만, 오리지널이든 수채화든 유화든 거의 없었다."

그는 "키스는 이 작품을 그릴때 이순신이 특별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며 "이 초상화가 키스가 평생 그린 그림 가운데 제일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키스는 인물을 그리면서 배경으로 그 인물과 관련 있는 그림을 집어넣는 일이 많았는데, 이순신 초상화의 배경으로 거북선만한 상징물은 없다. 다른 무인을 그리면서 거북선을 배경에 넣을수 있을까?"라며 '이순신 초상화'로 믿고 있다.

책에 따르면 송 교수가 이 초상화를 만난건 2012년. 키스의 조카 애너벨와 인연이 닿아 디지털 이미지를 보내줬고, 2012년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를 펴낼때 작품 목록에 올려두었다. 당시 송 교수는 이 무인의 그림을 '청포를 입은 무관'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후 애너벨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딸이 어머니가 소장한 그림을 파는 것을 알고 남은 그림을 도매처럼 사왔고, 그중 하나가 바로 '청포를 입은 무관'이었다.

"얼굴은 야윈편이며, 똑바로 뜬 눈은 사람을 꿰둟어 보는 듯하고 굳게 다문 입은 부드러우면서도 결의에 찬 느낌. 설령 다른 옷을 입혀놓는다 해도 나약한 문인의 인상은 전혀 아니다. 무사 뒤에 그려진 선박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북선과 판옥선 여러척이 휘날리며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모습이다. 왼쪽 하단에도 희미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들이 그려져있다"(302쪽)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담긴 초상화는 현재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거북선 하면 이순신. 송 명예교수는 '영국의 화가 키스가 정말 이순신을 그렸을까?'로 설레며 해석이 필요할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 당시 '난중일기'를 번역한 '이순신 전문가' 박종평 선생이 떴다.

"생면부지 박종평 선생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핸드폰으로 찍은 초상화 사진을 첨부해 감정을 의뢰했다. 박종평은 키스가 그린 초상화가 청전 이상범의 그림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감정했다. 이상범은 1932년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의 부탁으로 현충사에 모실 충무공 영정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박종평 선생의 감정을 받고 난뒤 2019년 국내 매체에 알려 '영국화가 키스가 그린 이순신 초상화가 발굴되었다'고 보도했다.

송 교수는 이 책에 키스의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얼마나 오래되었고,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한국의 여러 역사 미술전문가가 판단해줄 거라 믿는다면서 초상화의 상태를 밝혔다.

"작품 연도나 제목이 없음을 밝힌다. 일반적으로 목판화에는 제목을 영어로 붙이고, 엘리자베스키스가 서명을 하고 연도도 밝혔지만, 수채와 원본은 대가 제작 연도, 서명, 제목이 없다. 판화는 여러 사람에게 팔면서 선물하듯 연필로 서명해주었을 텐데, 수채화는 하나뿐이라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이순신 장군 초상화라고 여기는 건 "키스가 정확한 사실화를 그린 화가"라는 점이다. "상상이나 추상화와는 거리가 먼 화가이며 인상파나 입체파도 아니다....(중략)서양인 화가가 이순신 장군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의구심은 접어두어도 된다. 한국 역사를 많이 알고 한국 문화를 사랑한 키스가 이순신을 몰랐을리 없다. 또한 키스는 한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305~306쪽)

이와 관련 국내 최고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는 "이순신 장군 초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배경인 거북선 그림도 연대가 올라가봐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양식"이라며 "그림속 인물도 이순신 장군과는 무관한 인물화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군복에 관대를 끼고 있고 어색한 모습이라며 청전 이상범이 그린 이순신 초상을 보고 그린 것 같다"고 했다. 그 증거로 "청전 그림의 자세와 같다"며, "진짜 이순신 초상을 그렸다면 작가에게도 의미있는 그림인데, 그러면 사인과 제목을 써놓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이번에 나온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올드 코리아완전 복원판’은 송영달 명예교수가 30여년간 발굴한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일체와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키스의 한국 소재 그림 85점을 초고화질로 디지털화하고, 작품 도록용 종이에 인쇄하여 최대한 원본에 가깝게 구현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는 수집가인 송영달 교수도 확신을 주장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키스의 초상화는 이순신 장군의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까울뿐더러 제일 오래된 작품"으로 생각한다.

 "키스가 아무리 우리나라를 사랑했다 한들, 서양인의 그림이 충무공 이순신 영정에 합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면서도 송 교수는 이 책에 "현재 서재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을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가게 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376쪽.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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