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잘알]축구계 로맨티스트, 원클럽맨을 아시나요?

기사등록 2020/06/01 07:00:00

말디니, 이탈리아 AC밀란서 25년간 활약

EPL에선 맨유에서 24시즌을 뛰고 은퇴한 긱스가 대표적

K리그는 성남 신태용 13년 국내 최고 원클럽맨

[로마=AP/뉴시스] '로마의 왕자' 프란체스코 토티. 2017.05.28.
[서울=뉴시스] 안경남 기자 = 큰돈이 오가는 축구계에서 평생 한 팀을 위해 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명 스타 선수들은 새 팀을 찾을 기회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더 큰 규모의 클럽으로 더 많은 돈을 받고 이적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자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많게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이적료가 오가는 현대 축구에서 단순히 충성심만으로 클럽을 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군가는 트로피가 필요해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떠난다.

팬들은 배신자라 부르지만, 프로 무대에서 자본의 논리대로 흘러가는 건 오히려 자연스런 현상이다.

◇원클럽맨이란?

평생을 한 팀에서 뛴 스포츠 선수를 원클럽맨(One-club man)'이라고 부른다. 구단을 클럽으로 지칭하는 축구 종목에서 일반화된 표현이지만 한국에선 농구, 야구 등 팀스포츠에 자주 사용된다.

원클럽맨은 데뷔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한 구단에서 활약한다는 것은 구단에 대한 충성심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축구의 경우 승강제의 영향으로 선수들이 소속 구단이 승격 또는 강등되면 다른 구단을 이적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또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다른 클럽으로 임대를 떠나기도 한다.

실제 100년이 넘는 축구 역사를 가진 유럽에서도 원클럽맨은 매우 드물다. 파울로 말디니(이탈리아), 라이언 긱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카를레스 푸욜(스페인) 등 대표적인 원클럽맨들이 전 세계 축구 팬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밀라노=AP/뉴시스] AC밀란에서 평생을 보낸 파올로 말디니. 2009.05.24.
◇축구 본고장 유럽의 원클럽맨…'말디니부터 토티까지'

축구의 본고장 유럽의 빅리그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 세리에A다. 상위권 클럽간 이적이 잦은 잉글랜드, 스페인과 비교해 원클럽맨이 비교적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는 AC밀란의 전설적인 수비수 파울로 말디니다. 1984년 밀란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해 2009년 은퇴할 때까지 25년간 한 팀에서만 뛰었다. 한국 팬들에겐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이천수의 헛발질에 뒤통수를 맞은 선수로도 유명하다.

말디니는 밀란에서만 무려 902경기를 뛰며 정규리그 우승 7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5회 등 수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말디니 이전에는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 프랑코 바레시가 밀란에서만 719경기를 뛴 대표적인 원클럽맨이었다. 바레시는 1980년대 밀란이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팀에 끝까지 남아 주장직을 맡는 등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로마의 왕자'로 불린 프란체스코 토티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원클럽맨이다. 1989년 로마 유소년 팀에 입단해 2017년 로마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한 팀에서만 뛰었다.

1992년 프로 무대에 정식 데뷔한 토티는 25년간 786경기에 출전해 307골을 터트린 전설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토티는 유럽 빅 클럽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 선수였다.
[런던=AP/뉴시스] 맨유의 원클럽맨 라이언 긱스. 2013.02.23.
토티는 최근 스페인 언론과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 레알 마드리드로 갈 뻔했다. 거의 80% 이적이 진행된 상태였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밖에도 FC바르셀로나(스페인),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도 토티를 강력히 원했지만, 로마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켰다.

201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도 토티는 로마의 단장직을 맡을 정도로 구단에 대한 애정이 컸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인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30년간 머물던 로마를 떠났다.

토티는 기자회견에서 "로마를 떠나는 것은 마치 죽는 것과 같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했다"라며 눈물을 흘려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라이언 긱스와 리버풀의 제이미 캐러거가 원클럽맨의 상징으로 불린다.

알렉스 퍼거슨의 애제자였던 긱스는 1987년 맨유 유스팀에 입단해 1991년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퍼거슨 시대를 이끈 긱스는 2013~2014시즌까지 무려 24시즌을 맨유에서만 뛰며 963경기에 출전했다. EPL만 13차례 우승했고, FA컵 4회, 챔피언스리그 2회 등을 차지했다.

맨유에선 긱스와 함께 폴 스콜스가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스콜스는 2011년 은퇴했다가 팀이 부진에 빠지자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캐러거는 1996~1997시즌 리버풀에서 데뷔해 2012~2013시즌까지 활약하며 737경기를 뛰었다. 리버풀에서 EPL 우승 경력은 없지만, 2004~2005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밀란을 상대로 '이스탄불의 기적'을 연출하며 유럽 정상에 올랐다.
【성남=뉴시스】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신태용 감독 대행이 2008년12월1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구단사무실 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선아기자 avatar73@newsis.com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원클럽맨은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캡틴 카를레스 푸욜이다. 카탈루냐 태생인 푸욜은 1995년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유스시스템 라 마시아에 들어가 축구 커리어를 시작했다.

1991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1군 무대에 데뷔한 푸욜은 2014년까지 682경기를 뛰며 바르셀로나에서 정규리그 우승 6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K리그 대표 원클럽맨, 성남 '전설' 신태용

1983년 시작한 프로축구 K리그에도 한 클럽에 평생을 바친 원클럽맨이 존재한다. 하지만 선수들 대다수가 병역 대상자이고, 구단들의 역사가 짧아 원클럽맨에 대한 선정 기준이 유럽과 비교해 모호한 측면이 있다.

역대 K리그를 대표하는 원클럽맨은 성남의 천재 플레이메이커였던 신태용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다.

1992년 신인상을 시작으로 K리그 베스트11 9회, K리그 최초의 60골-60도움 클럽 가입 등을 달성한 신태용은 1992년 성남 데뷔 후 2004년 은퇴까지 13년간 한 팀에서 활약했다. 그는 성남에서 총 401경기에 출장해 99골 68도움을 기록했다.

신태용의 전성기는 곧 성남의 전성기로 불린다. 당시 성남은 K리그 3연패를 두 번 달성했고, FA컵과 리그컵 그리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까지 제패하는 등 아시아 최강으로 불렸다.
[런던=AP/뉴시스] 리버풀 레전드 제라드는 선수 말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2015.05.10.
울산 현대에서 뛰었던 공격수 김현석도 K리그에서 몇 안 되는 원클럽맨 중 한 명이다. 1990년 K리그를 풍미한 그는 1990년 울산에서 데뷔해 2003년까지 371경기를 뛰며 110골 54도움을 올렸다. 울산도 199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등 김현석과 전성시대를 보냈다.

아직 선수 생활이 진행 중이지만, 현역 선수 중에도 원클럽맨이 있다. FC서울의 고요한과 전북의 최철순, 포항의 김광석이 대표적이다.

서울 구단 최초로 3연속 주장 완장을 찬 고요한은 2006년 데뷔해 지금까지 한 팀에서만 뛰고 있다. 은퇴시까지 다른 팀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국내 최장 원클럽맨 가입을 예약해 두고 있다.

‘K리그 챔피언’ 전북의 열혈 수비수 최철순도 전북에서만 300경기 이상을 뛰었다. 포항 수비수 김광석도 군 복무 2년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포항과 함께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로맨티스트' 원클럽맨

시대를 거듭할수록 원클럽맨은 점차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당장 성적이 중요한 클럽들은 유스 선수들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고 있으며, 한 팀에서 일평생을 보낸 선수들도 선수 말년에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중국이나 중동 또는 미국 무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는 커리어 마지막을 일본 J리그에서 보내고 있다. 빗셀 고베는 이니에스타를 모셔 오기 위해 360억원의 연봉을 지불했다.

평생 리버풀에서만 뛸 것 같았던 스티븐 제라드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갤럭시에서 선수 말년을 보냈다.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축구계에서 로맨스를 기대하는 건 이제 어려운 세상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knan9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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