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 판매'도 선보상하라니…고심하는 은행들

기사등록 2020/05/22 10:04:39 최종수정 2020/05/22 10:39:40

지난해 DLF 사태 이후 소비자 보호 강화

분쟁조정 전에 손실 선보상 장려 분위기

은행, 배임이나 손실 보전 금지 위반 우려

"투자상품인데 자본시장 질서 해칠 수도"

[서울=뉴시스] 박은비 이준호 기자 = 주요 은행들이 라임자산운용 사태 관련 선보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배상비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보상부터 하라고 금융당국과 시민단체가 압박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현상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사태 이후 더 심해지고 있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날 신한은행을 비롯해 이날 예정된 우리은행 이사회 안건에 라임 펀드 선보상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반기 중에는 이사회를 거쳐 선보상 여부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 규모가 큰 은행이 결정하면 다른 은행들이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된 라임 펀드 판매사 중 증권사를 제외한 은행은 우리·신한·하나·기업·부산·경남·농협은행 등이 있다.

자구책으로는 손실액의 30% 수준으로 우선 보상하고 평가액의 75%도 가지급하는 방안이 언급된다. 이에 대해 판매사들이 난감해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금융감독원과 논의 중이었고 보상비율이 확정된 게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비율이 외부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취임 2주년 서면간담회에서 "피해구제는 분쟁조정으로 가는 것"이라면서도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 예로 하나은행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KB증권 호주 부동산 펀드 등 사례를 들기도 했다. 윤 원장은 "그걸 우리가(금감원이) 나서서 푸시하기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례들이 계속 이어지고는 있어서 그런 사례가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라임 건에서는 신영증권, 신한금융투자가 이미 선보상을 결정했다. 신한금투는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국내 펀드와 무역금융 펀드 개방형 30%(법인전문투자자 20%), 무역금융 펀드 폐쇄형 70%(법인전문투자자 50%) 보상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윤 원장이 금감원의 분쟁조정 전 자발적인 피해구제를 장려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금융권에서는 선보상 사례가 쌓이는 걸 경계하고 있다. 특히 라임 건은 일차적인 잘못이 운용사에 있는데 지급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판매사가 먼저 손실을 보상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주주에 대한 배임 소지가 있고 자본시장법상 손실보전행위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금감원이 이 사례에서 비조치 의견을 밝히더라도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은행들이 키코(KIKO)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은 (라임 사태에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미흡 지적이 나오니까 어떻게든 털고 가려는 게 아니냐"라며 "은행 자금이 공돈도 아니고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나서서 피해를 구제하라고 할 건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약속한 대로 자산운용을 하지 않아 계약취소를 하는 사례는 있었지만 최근처럼 손실이 나면 바로 보상하는 경우가 금융권에서 많지 않았다"며 "투자는 개인이 판단해서 하는 건데 자꾸 손실난 부분을 보상하는 프레임으로 가다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전한 투자문화가 정착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 역시 "금융소비자 보호 문화가 형성되면 좋은 건 맞는데 지금은 지나친 면이 있다"며 "이렇게 선보상을 하는 사례가 늘면 투자상품이라는 게 의미가 없어진다. 오히려 공정한 자본시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silverline@newsis.com, Juno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