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다시 불러낸 '한만호 비망록'…내용 뭐길래

기사등록 2020/05/21 14:43:41

고(故) 한만호씨 비망록에 '검찰 조작' 주장 담겨

1심 법정에서 검찰 진술 내용 번복…1심선 무죄

2심 재판부 "검찰 진술 신빙성 인정"…유죄 선고

일부 대법관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 반대의견

여당 '재조사' 요구 봇물…검찰 '허위사실' 반박해

[의정부=뉴시스]김선웅 기자 =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7년 8월23일 오전 경기 의정부교도소에서 2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친 후 만기 출소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2017.08.23.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가윤 기자 =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복역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 최근 고(故) 한만호씨의 옥중 비망록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씨의 비망록에는 "검사의 강요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은 검찰이 한 전 총리에 대해 강압적으로 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하며 즉각 이 사건 '재조사'를 요구했고, 추미애 법무부장관도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검찰은 한씨가 비망록에 허위사실을 기재했고, 이미 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건이라며 반박해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한씨의 옥중 비망록에는 "당시 6억원이 한나라당 친박계로 제공됐다. 검찰이 알고 있었으면서 제공사실이 나오자 덮어버리고 한 전 총리 쪽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같은 주장은 비망록에 여러 차례 반복해 적혀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체인 한신건영 대표로 있던 한씨는 한 전 총리 사건의 핵심 증인이다. 비망록은 건설업체 부도 이후 사기 혐의 등으로 복역 중이던 2010~2011년께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소 이후 위증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았다. 복역을 마친 뒤 지난 2017년 만기 출소했지만, 1년도 지나지 않은 2018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는 한씨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9억여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돼 지난 2015년 8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 조사 당시 한씨는 9억원을 한 전 총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으나, 1심 법정에 나와 이를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한씨의 검찰 진술은 객관적인 자료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진술을 전면적으로 번복하기도 해 일관성도 없다"며 한 전 총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씨의 비망록은 이렇게 진술을 번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비망록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도 있고 이 건은 전체를 직접 계획하고 주도하는 아주 윗선에서 만들어진 건이라 협조 안 하면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한씨는 검찰에 협조하기로 결심했지만, 자신의 진술을 선거 전에 언론에 유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검찰이 지키지 않는 바람에 진술을 번복하기로 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한씨는 비망록에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왜곡돼 죄책감으로 고통을 느낀다. 반드시 진술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뉴시스]차용현 기자 =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5월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9.05.23. photo@newsis.com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한씨의 검찰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어 유죄를 선고했다. ▲한씨가 발행한 1억원권 수표를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한 점 ▲한씨가 한 전 총리로부터 2억원을 받환받은 점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3억원을 요구한 점 등에 근거해 한 전 총리에게 유죄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적으로 유죄를 확정했다.

다만 대법원에서도 논란의 소지는 남았다. 일부 대법관은 "이 사건은 한씨가 허위나 과장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일단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자 이를 기회로 검사가 한씨의 진술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라고 지적하며 반대의견을 냈다.

한씨의 옥중 비망록이 공개되자 범여권 내에서 이 사건 재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도 합세해 한 전 총리를 '피해자'로 지칭하면서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추 장관도 전날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망한 증인이 남긴 비망록을 보면 수사기관의 기획되고, 증인을 협박하고 회유한 것들로 채워진 비망록으로 알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당시 검찰 수사팀은 출입 기자단에게 입장문을 전달하며 "한씨는 위 노트(비망록)를 법정에서 악용하기 위해 다수의 허위의 사실을 기재했다"며 "법원에서는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해 엄격한 심리를 진행한 후 한씨의 주장을 배척하고 한 전 총리에게 9억원 모두가 전달된 것으로 사실관계를 확정했다"고 반박했다.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증거를 갖춰서 재심을 신청하고 재심에 의해서 잘못된 판결인가 밝히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재심 청구를 위해서는 이미 법원 판단을 받았던 한씨 비망록 이외에 다른 새로운 증거 등을 찾아야 하는 만큼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의견이 많아 당분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yo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