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긴장속 유사시 대피소가 '반지하'의 시작
'필로티' 등장 후 감소했지만 서울만 22.8만가구
주거비 높은 서울·수도권 특유의 현상 '반지하'
올해 거주 취약층 공공임대사업 5500가구 확대
"공공임대·주거급여 동원해 지하문제 해결해야"
지하에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영화 처럼 '지하 냄새', '사생활 침해' 문제를 여전히 겪고 있으며 반복되는 수해로 안전과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9일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소장은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이슈리포트 '영화 기생충이 소환한 지하 거주실태와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국내 지하 거주실태를 분석하고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2015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국 1911만1731가구 중 1.9%에 달하는 36만3896가구가 영화 속 기택 일가족 처럼 반지하(지하 포함)에 살고 있다.
서울의 경우 378만5433가구 중 6.0%에 달하는 22만8467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경기도는 전체 427만4020가구 중 2.3%에 해당하는 9만9291가구, 인천은 102만3124가구 중 2.0%에 해당하는 2만1024가구가 반지하로 집계됐다.
전국 36만3896가구 중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95.8%(34만8782가구)가 몰려있는 것이다.
이는 주거비가 높은 서울과 수도권 특유의 현상이다. 최 소장은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과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웬만하면 살지 않을 저도로 지하가 주거로서의 경쟁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 집과 동네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만든 세트였다. 폭우 장면도 주변 하천의 물을 끌어들여 세트장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한 것이었다.
폭우로 인한 수해는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매년 반복되는 일이다. 지난 2017년에는 폭우로 침수된 인천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90대 노인이 방 안에 가득 찬 빗물 때문에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기도 시흥시의 상습 침수지역 지하에서는 25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 조손가구가 여덟번이나 침수피해를 겪어야 했다.
우리나라 '반지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사시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1970년 긴박한 남북관계를 감안해 유사시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해 주택에 지하층 설치가 허용됐다. 1975년 거실의 지하 설치를 금지하고 있던 건축법 개정으로 거실을 지하에 설치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조치는 지하주거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돼 지하층 전용이 급격하게 확산됐다.
관련 제도의 잇따른 완화로 증가하던 지하 거주는 1997년과 2002년에 주택 주차기준이 대폭 강화되고 필로티 구조 주택의 등장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05년 59만6632가구(3.7%)에서 2010년 51만7689가구(3.0%), 2015년 36만3896가구(1.9%) 등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6월까지 36만 반지하 거주가구 실태를 지자체를 통해 전수조사하고,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과 보증금 지원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국토부는 또 '반지하'를 포함한 쪽방·고시원·비닐하우스 등 취약 계층 거주민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 이주 사업 물량을 올해 5500가구(종전 2000가구)로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보증금·이사비 등도 지원한다.
최 소장은 "인력과 재정 투입 없이 지하 거주가구 전수조사를 지자체에 맡길 경우 지자체 역량과 의지에 따라 조사 품질이 좌우될 우려가 크기 때문에 면밀한 조사기획이 필요하다"며 "지하주택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을 위해서는 구조, 채광, 환기, 누수 등에 대한 주거상태조사를 표본조사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임대주택, 주거급여, 집수리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지하문제를 해결하고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주택에 대한 임대금지 등 새로운 정책 수단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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