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은 '야구도 했었느냐'는 질문이 반갑다. 최근 막을 내린 SBS TV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통해 '선수 출신이라서 연기가 리얼했구나' 등의 반응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하다.
'스토브리그'는 야구 꼴찌팀 '드림즈'에 새 단장 '백승수'(남궁민)가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기무는 드림즈 스카우트팀장 '고세혁'(이준혁)의 오른팔인 차장 '장우석'으로 활약했다. 처음에는 '왜 난 야구선수 역할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정동윤 PD님이 '이신화 작가가 날 추천했다'고 하더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작가님이 이 작품을 5년 넘게 준비하지 않았나. 취재하면서 내가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솔직히 활용도가 제일 높을텐데 왜 날 야구선수 역에 캐스팅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특별한 대답은 못 들었지만, 내가 '임동규'(조한선) '강두기'(하도권)보다 늙어 보인 게 아닐까, 하하. 막상 촬영해보니 드림즈 선수들이 야구를 하거나 훈련하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프런트에 있는 게 더 재미있었다."
"프로야구팀에서 2년 밖에 활동을 안 해서 프런트와 스토브리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면서도 "본 게 있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걸 하는지 느낌으로 안다. '나 같은 애들을 자르기 위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방출선수 명단 회의 하는 장면에서 드림즈 스카우트 팀장 '양원섭'(윤병희)이 '얘네들은 10년 보고 데리고 왔는데, 지금 자르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누군가 나를 이렇게 보호해줬으면, 지금도 야구하고 있을텐데 싶더라"라며 아쉬워했다.
우석은 드림즈의 '스파이'로 활동했다. 운영팀의 선수연봉 고과기준 자료를 빼돌리거나, 2차 드래프트에서 보강할 미계약자 포지션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곤 했다. "어머니도 '너무 얄밉다'면서 그러지 말라고 했다"며 "PD님이 우석은 완전히 적폐이길 바랐다.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못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해 원없이 못되게 굴었다"고 돌아봤다.
이 작가는 '한 사람의 순정과 진실함을 장우석을 통해 보여주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근데 김기무 배우님이 큰 영감을 줬다'며 고마워했다.
"13회 극본이 나온 날 저녁에 회식이 있었다. 작가님이 '극본 어땠느냐?'고 묻길래 사실 '기분이 너무 더러웠다'고 했다. 극중 우석도 야구선수 출신인데 후배들과 드림즈를 향한 애정이 있지 않았을까. 보통 프로야구팀에서 은퇴할 정도면 인생의 절반이 넘는 25년 이상 야구를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야구선수로서 내 자긍심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니 작가님이 깜짝 놀라더라. 한참을 날 보다가 '기다려 보세요'라고 하더라. 이후 우석이 개과천선했는데 내 의견을 반영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이준혁(48)을 향한 고마운 마음도 잊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배운 점이 많다. "형은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며 "리허설 할 때도 항상 의견을 묻는다. 굉장히 능동적이고, 1초도 버리는 시간이 없다. 그냥 서 있거나 쳐다보는 신에서도 뭐든 하나씩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장우석과 고세혁은 도긴개긴"이라며 "우석이 세혁과 함께 야구할 때 행복했던 추억으로 인해 의리를 지켰지만, 결국 의리가 아니라 밥그릇 싸움이었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이냐고? 댓글에는 '장우석이 더 쓰레기'라는 반응이 많더라. 준혁 형은 조금 귀여운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고3 때 고대 체대에 원서를 넣지 않고, 서울예대에 지원해 합격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많이 한다"면서 "지금은 야구한 덕분에 주목 받는거 아닌가. 솔직히 나도 20년 했는데 '야구선수 출신 덕 좀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야구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3~4년은 아버지와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힘이 되는 존재다. 아내인 뮤지컬 배우 김윤지(41)와 장인인 탤런트 김진태(69)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스물아홉에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들어갔을 때 막막하기도 했으나, 당시 지도교수였던 탤런트 이순재(86)에게 배운 점을 신념으로 삼고 있다.
"이순재 선생님은 강연을 하거나 공연할 때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 마음 속에 큰 젊음과 세련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워크숍 공연을 준비할 때 서른을 앞두고 미칠 것 같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힘들어 선생님께 '하루만 시간을 주면 안 되느냐'고 했는데 '참고 하라'고 하더라. 연습이 끝난 뒤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에게 '내일 일이 있어서 못 나오니 연습 알아서 해'라고 하는데 눈물이 나더라. 나를 위해 배려해준 게 감사해서 힘든 게 다 잊혀졌다. 선생님처럼 가장 나이가 많은 배우가 되고 싶다. 그만큼 오랫동안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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