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반대' 숙대생, 혐오 단톡방 개설…음성인증 요구

기사등록 2020/02/03 10:18:58

일부 학생들, 성전환 합격생 입학 저지 카톡방

주민증·목소리 등 4가지 인증 절차 거쳐 초대

90년대 법대생 고교 학생증·손모양 추가 인증

반발여론도 "단순히 혐오스럽다며 반대 안돼"

[서울=뉴시스] 성전환(남→여) 수술을 받은 뒤 최근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22)씨의 이야기가 알려진 이후, 숙명여대 학생들이 A씨의 입학을 막기 위한 공동 대응 카카오톡(카톡) 단체대화방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들은 A씨가 해당 방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주민등록증·학생증 사진, 전화를 통한 음성 확인, 손등과 손목 사진 등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치고 있다. 2019.02.03. (사진 = 숙명여대 학생 커뮤니티 글 갈무리)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최근 성전환(남→여) 수술을 받은 뒤 숙명여대 법과대학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22)씨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일부 숙명여대 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까지 만들어가며 A씨 입학 저지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단체 대화방은 A씨의 입장을 막기 위해 각종 인증 절차까지 만들어놨는데, 이를 두고 "옳지 않다"는 다른 학생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3일 뉴시스 취재 결과, 숙명여대 학생들이 사용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A씨의 합격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30일 이후 지난 2일까지 6차례에 걸쳐 A씨 입학 반대를 위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참가 학생을 모집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날 오전 기준 이 대화방에는 100여명의 숙명여대 학생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개글에 따르면 이 커뮤니티는 2007년 8월 처음 문을 열었으며, 각종 교내·외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는 나눔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모집 게시물을 올린 학생은 "트랜스젠더 입학 예정자에 대한 학교 처우에 관해 오픈 카톡방을 개설했다. 이 방에서는 입학 반대의 입장에서 새내기와 재학생이 함께 시위·메일·전화 총공(총공세)등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할 예정"이라며 "재학생은 글이나 메일 등 추가적으로 인증을 거친 분들만 들어오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대화방은 입장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혹여 A씨가 대화방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얼굴과 주소·이름·주민번호 등이 적힌 주민등록증 ▲숙명여대 합격증·학생증 ▲전화를 통한 음성 확인 ▲숙명여대 커뮤니티에 자신이 쓴 게시물 등 4가지의 인증을 거친 학생들만 대화방에 초대될 수 있다.

이와 함께 A씨가 속해있는 90년대생 법과대학 소속 학생들 대상으로는 2가지 인증이 추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고등학교 학생증 사진 ▲손 앞·뒤와 손목까지 나와있는 사진 등을 추가적으로 인증해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뉴시스] 지난달 31일, 성전환(남→여) 수술 이후 숙명여대에 최종합격한 트랜스젠더 A(22)씨가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A씨의 손을 비춘 이 영상이 나간 이후, A씨의 입학을 막기 위한 카카오톡(카톡) 단체 대화방을 만든 숙명여대 학생들은 A씨가 이 방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손등과 손목 등이 나온 사진 인증을 받고 통과한 학생들만 해당 대화방에 초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9.02.03. (사진 = 방송사 인터뷰 영상 갈무리)
한 숙명여대 졸업생은 "A씨가 성전환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됐고, 방송에도 손등이 나온 만큼 손목과 손등 사진을 보면 대화방을 운영하는 학생들이 A씨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같은 인증 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숙명여대 학생들은 공동 대응을 위한 카톡 대화방 개설 외에도 총동문회에 "트랜스젠더의 합격을 막아달라"는 이메일을 보내고, 대학 민원게시판 등에 항의 글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또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는 "A씨에 대한 인신공격 등 거친 표현은 자제하자"며 A씨 입학을 지지하는 여론 역시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학생은 숙명여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트랜스젠더를 이렇게 가까이 하고, 한 공동체에 속해본 적이 없어서 거부감과 불안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명확하고 이해 가능한 이유를 내세우며 입학에 대한 학교 측 책임을 묻고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단순히 '트젠(트렌스젠더)이 싫다. 혐오스럽다. 그래서 입학하면 안 된다' 등의 표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트랜스젠더 학생을 비난하는 지나치게 센 표현은 되도록 자제하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QUV)는 지난 2일 '그녀의 합격이 바꿀 세상을 응원한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수많은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지지하고 연대해온 박한희 변호사의 존재가 그녀의 용기가 되었듯, 정의와 사람을 수호하는 법학도의 길에 다가선 그녀의 존재가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남→여) 수술을 받은 뒤, 같은해 10월 법원에서 성별정정 신청이 허가돼 주민등록번호 앞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11월 수능을 치른 뒤 최근 숙명여대로부터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지난달 30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주민등록번호를 바꾼 트랜스젠더도 당당히 여대에 지원하고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저를 보면서 여대 입학을 희망하는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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