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 베트남 여성 '짱'
남편 찾아 한국왔지만 "비즈니스"라며 외면
가사도우미로 근무중 도둑으로 몰려 쫓겨나
다누리콜센터 13개 언어 상담, 지원 연계 돼
새일센터에선 맞춤형 재취업 프로그램 지원
한국에 도착한 첫날, 남편의 나라여서 내겐 모국과도 같은 곳이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는 묘하다. 남편의 행방을 묻기 위해 찾은 한정식집에서는 대뜸 "우린 불법체류자 안 쓴다"며 몰아냈다.
시간이 흘러 가져온 여비도 떨어져간다. 남편을 위해 배웠던 요리실력과 한국어 능력을 활용해 운 좋게도 대기업 사장님 집에 가사도우미로 취업했다.
그러다 다행히 남편을 찾았다. 우린 운명인가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고생은 안 했는지, 나와 언제 다시 합칠지 듣고 싶은 말이 한 가득이다. 그런데 남편에게서 돌아온 말은 "비즈니스 관계"였다. 사랑이 아니라 사업 때문에 나랑 결혼했단다. 내가 눈물을 흘리니 오히려 울고 싶은 건 자신이라며 윽박지른다.
설상가상으로 일하는 댁 사모님의 반지가 없어졌다. 많이 아끼는 반지 같은데 나도 같이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사모님이 갑자기 날 도둑이라고 한다. 따님도 내가 반지를 만지는 것을 봤다고 한다. 억울하다. 아니라고 호소해 보지만 사모님은 한밤중에 나더러 나가라고 한다. 이번달 월급도 받지 못했는데. 평소엔 인자하던 사장님도 "인생공부한 셈 치자"며 날 외면한다. 결국 그날밤 나는 가방 하나만 손에 쥔 채 길바닥에 나 앉았다.
나는 한국인 사업가와 결혼한 베트남 여성 '짠 티 짱'이다.
요즘 20%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KBS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에 등장하는 베트남 여성 '짱'(홍지희)은 베트남에서 사업가라고 속인 한국인 남성 '남일남'(조희봉)과 결혼했다. 이 남편은 자신을 한국에서 온 유명한 한식당의 장남이라고 소개했다.
남편이 '짱'과 결혼한 이유는 사업 때문이다. 극 중에서 구체적인 이유는 안 나오지만 비자 등의 사업적 혜택을 목적으로 베트남 현지 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 사업 실패로 '짱'과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 남일남은 결국 '짱'을 버린 채 한국으로 도망쳤다. '짱'이 찾아오자 오히려 화를 내는 모습까지 보인다.
남편에게서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억울하게 쫓겨난 '짱'은 모텔을 전전한다. 한국에서 받았던 월급을 고향의 부모님에게 생활비로 보냈던 '짱'은 새 직장을 구하려고 음식점을 전전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결국 수중에 있던 돈이 바닥나고 모텔 숙박료를 내지 못하는 상황까지 오자 모텔에서도 쫓겨난다. 한국에서 갈 곳이 없는 '짱'은 하는 수 없이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입김으로 손을 녹여본다. 다행히 맘씨좋은 국밥집 사장님 왕꼰닙(양희경)의 배려로 식사를 하게 된 '짱'은 일손이 필요했던 이 국밥집에서 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하게 된다.
◇외국인 '하대'하는 인식 여전…한국 생활 어려워하는 이주여성들
드라마에서는 '짱'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현실을 반영하듯 말이다.
반지가 사라졌을 때 대기업 사모님 '구윤경'(경숙)은 "작정을 하고 우리 집에 왔다"며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다짜고짜 몸을 뒤진다. 구윤경은 평소에도 '짱'이 외출을 하겠다고 하면 "여기저기 기웃대지 말고 빨리 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구윤경의 딸 황수지(정유민)는 보물에 손을 댄 걸 본적이 있다며 추측을 확신으로 바꾼다. 반말은 기본이다. 짱이 밤 중에 쫓겨났음에도 구윤경은 걱정은 커녕 "소송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를 듣고 있던 남편 황병래(선우재덕)은 합리적인 척 하면서도"소송을 했다가 위화감만 생긴다" "인생공부 했다고 쳐라"며 '짱'이 도둑이라고 확인사살을 한다.
왕꼰닙의 딸 '남지영'(정소영)은 '짱'이 손님으로 왔을 땐 친절함을 베풀었지만 국밥집에서 일을 하자 "결혼했냐고 묻잖아"라며 단번에 말을 놓는다. 대답을 하지 않자 이상하다며 윽박지르고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본다.
여성가족부(여가부)의 2018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다문화가구는 30만6995가구다. 이 중 30.9%는 외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24.1%는 한국 생활에서 외로움을, 26.2%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2018년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에선 일반 성인국민의 다문화수용성은 100점 만점에 52.81점에 불과했다. 2015년보다 1.14점 감소했다. 특히 거부·회피 정서는 64.46점인데 반해 교류 행동 의지는 42.48점으로 외국인을 기피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이 드라마의 메인 홈페이지 상단의 출연자 사진을 보면 '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남다른 가족애를 발휘해 진정한 가족으로 단단히 여물어 가는 사연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짱'은 우리 사회의 가족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현실에서는 이주배경 여성을 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 맘씨좋은 국밥집 사장님을 만나는 '운'에 기대지 않아도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들이다.
여가부에서 운영하는 다누리콜센터(1577-1366)에서는 일상 속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들에 대해 전문가를 통한 상담을 제공한다. 폭력피해 등 긴급한 상황에 처한 여성에게는 피해자 신변보호 제도와 보호시설 입소연계, 긴급생계비 지원 등이 제공된다. 원활한 지원 제공 및 설명을 위해 13개 언어로 상담이 가능하다. 베트남어, 중국어, 타갈로그(필리핀)어, 몽골어, 러시아어, 태국어, 크메르(캄보디아)어, 일본어, 우즈베키스탄어, 라오스어, 네팔어, 영어, 한국어 등이다.
새 근무지를 찾으려는 다문화여성은 여가부의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새일센터는 경력단절 여성에게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특히 올해는 취약 계층과 지역 일자리 특성 및 상황에 맞는 지역특성화 통합사례관리 방식을 신규 도입한다. 결혼이민여성을 특성화 한 안산센터처럼 이주배경 여성을 위한 맞춤형 지원을 하는 곳도 있다.
또 결혼이주여성이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복지서비스를 신청할 경우 본인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받아 해당 지역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정보를 연계한다. 정보를 받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선제적으로 이주여성을 찾아가 밀착 지원하고 방문한국어교육, 자립 및 취업 연계, 사례관리 등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울러 국내 체류 연장 허가 시 배우자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면 이혼 후에도 간이귀화를 할 수 있도록 제도도 개선됐다.
여기에 여가부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해 입국 전부터 현지에서 8시간 사전교육을 실시하고 인권보호, 피해예방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지사전교육 대상국가는 베트남, 필리핀, 태국 등 3개국이다.
자세한 사항은 보건복지상담센터(129, http://www.129.go.kr), 다문화 가족지원 포털 '다누리'(https://www.liveinkorea.kr/portal/main/intro.do), 여성새로일하기센터(https://saeil.mogef.go.kr/hom/HOM_Main.do)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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