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본 "합법 행진…장애인 앞세워 법 유린하지 마라"
학부모들 "오죽하면 이러나…우린 아이 밖에 몰라"
서울맹학교 학부모회와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의회, 청운동 주민 등 30여명은 28일 오후 2시께 서울 신한은행 효자동지점 인근에서 '시각장애인 학습권 및 주민 안정권' 확보를 위한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그러나 오후 3시40분께 1차 집회를 마친 보수단체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경복궁역을 지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방향으로 올라오자, 맹학교 학부모들과 학생·주민들은 행진을 막기 위해 침묵시위에서 사용했던 현수막들을 들고 길을 막아섰다.
이들이 들고있는 현수막에는 '빨갱이 아니고 이 동네 사는 주민입니다', '어른들이 왜 그러세요! 이 동네 많은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집회 및 행진 그만두세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대치를 앞두고 혹시 모를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 추산 약 150명의 경찰 병력이 현장에 배치됐다.
맹학교 학부모·학생들과 마주한 국본 측은 확성기를 통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며 "장애인을 앞세워 대한민국 법을 유린하고 있는데, 우리 말고 나라를 망친 문재인한테 가서 이야기 해라"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학부모 강복순씨는 "오늘 뚫리면 계속 뚫린다. 갈거면 우리를 밟고 가라"라고 소리치며 길을 막아섰고, 다른 학부모는 "우리가 오죽하면 이러겠나. 우리는 우리 아이들밖에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고성이 오가는 과정에서 일부 국본 측 관계자들은 학부모들을 향해 "씨X" 등의 욕설과 함께 "못생긴 아줌마들 비켜!" 등의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약 30분 간 대치를 이어가던 맹학교 측은 '국본이 노래와 마이크를 끄는 조건'으로 국본 측의 행진길을 열어줬다. 맹학교 측이 앞서 걷는 방식으로 국본은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약 300m를 걸으며 2차 행진을 진행했지만, 학부모들이 "더 이상은 허용할 수 없다"며 다시 길을 막아서면서 또 다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국본 측은 약 30분 간 "문재인 퇴진! 처벌하라!"와 "문재인은 방 빼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결국 오후 5시께 발걸음을 돌렸다.
맹학교 학부모들과 주민들은 청와대 인근 대규모 집회의 소음 등으로 인한 고통을 꾸준히 호소해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등 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지면서 장애 학생들의 학습과 주민 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학부모들은 지난 21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청와대 인근 대규모 집회 자제를 요청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경찰은 보수·진보단체 집회에 대한 제한 통고를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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