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두 주역, 5·18항쟁 책임 놓고 엇갈린 행보

기사등록 2019/12/06 15:19:55

장남 통해 책임 인정 뒤 사죄하는 노태우 '결자해지'

재판 불출석 뒤 골프채 휘두르는 전두환 '후안무치'

5·18 왜곡 회고록, "수정 고려" vs "잘못 없다" 상반

[광주=뉴시스] 5·18민주화운동 40주기를 앞두고 5·18 무력진압 이후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주역인 두 전직 대통령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올해 3월 5·18 회고록 사자명예훼손 재판을 위해 광주지법에 출석할 당시 취재진 질문에 신경질 내는 모습,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가 지난 8월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12.06.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5·18민주화운동 40주기를 앞두고 무력진압 진상규명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주역인 두 전직 대통령의 행보가 엇갈리고 있다.

투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장남을 통해 5·18에 대한 사죄의 뜻을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는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왜곡 회고록 관련 형사재판에 불출석하면서도 골프장 라운딩을 즐겨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6일 오월어머니집 등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는 지난 5일 광주 남구 오월어머니집을 찾아 5·18피해자에게 머리를 숙였다.

노씨는 "5·18 당시 광주시민과 유가족이 겪었을 아픔에 공감한다. 아버지께서 직접 광주의 비극에 대해 유감을 표현해야 하는데 병석에 계셔서 여의치 않다"면서 "광주의 아픔이 치유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월단체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는 "아버지가 평소 '역사의 과오는 바로잡고 가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었다. 그 뜻을 가족들이 공감하고 있어 장남으로서 광주에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 "신군부의 일원이었던 아버지가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면서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5·18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갖는 의미와 큰 뜻을 이해하게 됐다. 광주 정신을 잊지 않고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씨는 배석자와의 대화에서 '아버지의 회고록 문제도 개정판을 낼 지 상의해 봐야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이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던 2011년 펴낸 회고록의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노씨는 앞서 지난 8월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오월영령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기도 했다. 노씨의 참배는 노 전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또 이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1988년 2월 망월동 구묘역 참배도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5·18 무력진압을 주도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53)씨가 지난 8월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노 씨는 방명록에 희생자·유족에 대한 사죄의 뜻과 정신계승을 담은 글을 적었다. 2019.12.06. (사진=뉴시스DB) photo@newsis.com

하지만 광주시민 학살을 주도한 전두환씨는 끝까지 버티고 있다.

전씨는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잇단 재판 불출석 끝에 지난 3월에서야 광주법정에 섰지만, '발포 명령'을 부인하는지 묻는 취재진 질문에 사과 대신 "이거 왜 이래"라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알츠하이머 등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불출석한 전 씨는 지난달 7일 강원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촬영, 공개된 영상 속에서 전씨는 5·18 책임을 묻는 질문에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또 "군에 다녀왔느냐, 당시 발포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명령을 하느냐"고 항변했다.

1030억 원에 이르는 미납 추징금·세금 체납에 대해서는 "자네가 납부해 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달 11월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12.06. photo@newsis.com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 절친했던 두 전직 대통령은 군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끌며 1979년 10·26사태 이후 '권력의 공백'을 노려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신군부 핵심세력으로 떠올라 '정권 찬탈 시나리오'로서 5·18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한 뒤 권좌를 차례로 차지했다.

이철우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5·18 진압 책임에 대한 신군부 1·2인자의 상반된 태도가 눈에 띈다. 노 전 대통령이 장남을 통해 오월영령에 사죄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하는 것으로 좋게 평가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진상규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역사 앞에 고백해야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고 평했다.

전씨에 대해서는 "광주시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져놓고도 일평생 용서를 구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용서를 받을 수도 없는 인물이다"며 "진상을 낱낱이 밝혀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 민주화운동 단체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의 형사재판이 열린 지난달 11일 광주지법 앞에서 전 씨의 법정 불출석 허가 취소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벌였다. (사진=뉴시스DB) 2019.12.06.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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