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피해 광주 J초교, 교과서 280권도 불에 타
부족분 교과서 곳곳서 답지, 하룻만에 정상수업
학교 측 "기적과는 같은 일" 학부모 "광주 정신"
광주 J초등학교 배모 교감은 '그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 권의 교과서라도 힘을 보태고자 한달음에 달려 왔다"는 이웃 학교 동료 선생님의 말씀에 울컥했다.
이 학교 3층 5학년2반 교실에서 불이 난 건 지난 5일 오전 11시8분께. 교사와 학생들이 강당 체육수업에 여념없던 사이, 교실에선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화염에 뒤덮였고, 복도 천장과 벽면, 창문도 시꺼멓게 그을렸다.
소방차와 구조차 10여대, 소방관 60명이 투입돼 불은 10여 분만에 진화됐고, 교직원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단 한 건의 인명 피해도 없이 학생과 교직원 190여 명은 무사히 대피했으나 아이들의 배움터인 10평(30여㎡) 남짓한 교실은 폭격을 맞은 듯 폐허로 변했다.
책·걸상은 물론 교탁과 칠판, 시청각TV, 공기청정기, 실물화상기, 그리고 피아노에 사물함과 청소함까지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게 없었다. 피해액만 2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피해품 중에는 교과서도 포함됐다. 추억이 담긴 휴대전화는 철제보관함에 둔 덕분에 화마를 피했지만, 교과서는 잿더미로 변하거나 심하게 그을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교직원들은 "교과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당장 다음날 수업이 막막했다. 한 달 간의 복구공사 기간동안 교실을 옮겨 임시수업은 할 수 있지만, 교과서가 없으면 수업 차질이 불가피해서다.
필요한 교과서는 무려 280권. 5학년2반 학생 20명에 학생당 14과목의 교과서가 필요했다. 부랴부랴 대책회의가 열렸고, 일부 교사는 서점으로 뛰었고, 일부 교사는 SNS에 도움을 청했다.
하룻만에 부족분 180권 대부분이 확보됐고, 여유분이 거의 없던 일부 교과서도 이틀 만에 학교로 답지해 정상수업이 가능하게 됐다.
"감동 그 자체였죠. 우리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이 날은 '기적의 날'이었습니다."
배 교감은 10일 "'내 아픔'인 양 여분의 교과서를 뒤져 직접 보내 주신 분들, '선생님들은 마음을 추스리시고 아이들에게 집중하시라'며 교과서 수량 확보에 애써 주신 교육청 관계자들, 침착하게 아이들을 인솔한 교직원 모두 '함께함'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계림초 신명순 교장은 "화재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너나없이 교과서 확보에 나서 22권을 찾아냈다"며 "보석을 찾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퇴근 후에는 직접 추어탕을 사들고 위로방문도 했다.
화재 상황을 문자로 전달받은 한 학부모는 "조마조마했는데 다친 아이들이 없고, 교과서도 하룻만에 모두 구해 감사할 따름"이라며 "이런 게 주먹밥을 나눠 먹던 '광주정신'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소방 당국은 당시 화재가 전자기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감식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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