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협상 소식 하루 만에 北 미사일 발사…靑, 진의 파악에 총력

기사등록 2019/10/02 16:36:02

NSC 상임위 "北, SLBM 발사 가능성 무게…한미, 의도·배경 분석"

SLBM '게임 체인저'…실무협상 대비 사전 기선제압 시도 관측

靑 "상황 예의주시하고 있어…북미 실무협상 동력 잃지 않아야"

【서울=뉴시스】청와대 본관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8.19.
【서울=뉴시스】김태규 김지훈 홍지은 기자 = 북미가 팽팽한 샅바싸움을 끝내고 비핵화 실무협상 날짜를 도출한지 하루만에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 나서면서 청와대가 의도 분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 교착상태에 있던 비핵화 대화의 공식 재개에 형성됐던 기대감이 한층 수위가 높아진 북한의 무력 시위에 묻히는 모습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늘 오전 7시께 강원도 원산 북방 일대에서 동해 방향으로 미상 발사체를 발사했다"며 "군은 추가 발사에 대비해 관련 동향을 추적 감시하면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대 비행고도는 910여㎞, 거리는 약 450㎞로 탐지됐다는 게 합참 분석이다.

북한의 무력 시위는 지난달 10일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이뤄진 초대형 방사포(KN-25) 발사 이후 22일 만이다. 올해 들어 11번째 단거리 탄도미사일 및 방사포 발사다. 이날 미사일은 사거리와 고도 면에서 앞선 10차례 발사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사거리는 통상 최대 고도의 3배 정도 된다는 점에서 이번 미사일의 경우 비정상적인 고각 발사의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오늘은 거리를 대략 450㎞로 줄여서 발사했다고 예상하고 있다"며 고각 발사 가능성에 무게를 더했다.

따라서 정상 발사를 한다면 1000~2000㎞ 밖 목표를 타격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북한이 발사해 온 300~400㎞ 내외의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는 전혀 다른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긴급회의에서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선 분석했다. 북한이 이미 보유 중인 SLBM 북극성-1형의 사거리는 500㎞로, 사거리를 대폭 늘린 신형 SLBM 북극성-3형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2017년 5월21일 지상에서의 기습적인 발사 목적으로 기존 북극성-1형을 개량한 고체연료 기반의 북극성-2형의 최종 기술적 완성을 선언한 바 있다. 북극성-3형은 지상 발사용인 북극성-2형과 달리 다시 잠수함 발사용으로 개발했을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북한이 3000t급 신형 잠수함의 작전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전력화를 위한 신형 북극성-3형을 발사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서울=뉴시스】노동신문이 25일자에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인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지도하에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지난 5월 전략잠수함 탄도탄의 수중사출시험을 성공시키고 불과 1년도 못되는 기간에 비행시험단계에 진입하는 빠른 개발속도를 과시한데 이어 오늘 또다시 보다 높은 단계의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서 성공함으로써 핵무력고도화에 커다란 군사적 진보를 이룩했다고 보도했다. 2016.08.25.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북한은 지난 7월23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형 잠수함 건조 현장 지도 사실을 공개하면서 "동해작전수역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며 작전배치를 앞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게다가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8월23일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 방문 때 배경에 '수중전략탄도탄 북극성-3'이라는 현황판이 사진에 포착된 바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에 발사한 것은 잠수함 발사용인 북극성-3형이 아닐까 싶다"면서 "북한의 기준이 되는 구 소련의 잠수함 탑재 미사일 R-27의 사거리가 약 2500㎞인데 그 이상으로 개발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토록 전문가들이 사거리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5일 예정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해 북한이 발사해온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이 협상 동력 유지를 위해 묵인해왔지만 실제 협상장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5월4일 발사체를 탄도미사일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안보리 결의 위반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정전협정 위반 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던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청와대는 미국과의 실무협상 사흘 앞두고 북한이 도발 수위를 끌어올린 것에 집중하고 있다. 자칫 어렵게 합의한 실무협상 마저 물건너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청와대의 판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북미 실무협상이라는 대화의 동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부분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NSC 상임위는 "북한이 10월 5일 북미협상 재개를 앞두고 이러한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한 데 대해 강한 우려를 표한다"면서 "북한의 의도와 배경에 대해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북한 발사체 관련 대응 회의에 앞서 정경두 국방장관, 노규덕 안보전략비서관과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19.08.02.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북한의 도발 속에 담긴 숨은 메시지까지 정교한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계산법'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본격적인 실무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위협이 되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력을 얻으려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9·19 평양선언에 영변 핵폐기 시설 의향을 명시적으로 밝혔다가 결과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영변+α'를 요구받았던 만큼 동일한 카드를 들고 협상에 임했다가는 자칫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인식에 새 전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린 것으로 관측된다.

은밀한 곳에서 기습적인 발사로 '게임 체인저'라는 평가를 받는 SLBM 기술을 추가적으로 보유할 경우 '영변+α'를 고수하는 미국의 압박으로부터 다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엽 교수는 "북극성-3형이 맞다면 단거리 전술탄도미사일이 아닌 최소 중거리 전략탄도미사일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와 미국이 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며 "지난 7월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돌아보았다는 보도와 연결시켜봐야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고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SLBM은 기동성과 은밀성이 특징이기 때문에 가장 위협적이고 억지력이 강한, 전략적 가치가 높은 무기로, 이것을 북한이 보유하겠다고 주장한다면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협상에서 SLBM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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