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한숨돌렸지만 정규직 전환 개선과제 '산더미'

기사등록 2019/09/30 15:18:25

정규직 전환 지상주의 치우쳐 현실 외면 지적

기존 공무원·정규직 반발 살피는 균형감 필요

노동존중특별시 안착하려면 공정성 고려해야

"중앙정부 직접나서 법령개정 등 적극 역할해야"

【서울=뉴시스】서울시청 청사. 2019.04.02.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감사원이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친·인척 채용비리 감사를 실시한 결과 조직적인 비리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서울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큰 숙제를 떠안았다.

친·인척 관계인 공사 직원들을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이라는 명분에 치우쳐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합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진 승격 조치였다고 하더라도 향후에 제기될 수 있는 기존 직원과 수험생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 서울시, 나아가 중앙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0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친·인척 관계인 서울교통공사 신규 직원들이 입사 과정에서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공사 입사 관련 정보가 가능한 한 많이 공개돼 수험생들간 정보 격차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지만, 기존 직원의 친·인척인 응시자는 업종의 특성 등을 미리 알고 지원하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이점은 서울교통공사 내 친·인척 직원의 수로 직결됐다.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정규직(일반직) 전환자 1285명 중 192명(14.9%)이 재직자와 친·인척 관계였다.

이 수치에 대해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시와 공사는 다른 감사대상 기관의 친·인척 비율은 서울교통공사보다 더 높다는 점, 공무원이라는 직종의 특성상 '부부 공무원' 숫자가 많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항변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철도 영역은 가족사업 성향이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가 다 기관사나 신호수 등 이 영역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다"며 "일본이나 유럽도 그렇고 코레일도 마찬가지다. 철도업은 마니아적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서울교통공사는 그간 기술 관련 직종 채용공고를 내도 미달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채용비리에 해당할 정도로 촉망받는 직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직종 특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특성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이 아닌 다른 응시자들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어도 된다는 면죄부가 되어선 안된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2018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18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인사하고 있다. 2018.10.18. amin2@newsis.com
실제로 서울시 안팎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정에서 문호가 완전히 개방되지 않고 알음알음으로 절차가 진행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기회 자체가 오픈이 안되어 있다. 공무직(무기계약직) 노조 간부가 정규직 전환 심사 때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심사를 하고 있다"며 "이것은 심사가 아닌 통과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종별이나 업역별 세밀한 고려가 부족했던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구의역 김군 사고 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상과제에 매달리는 바람에 직종별 차이를 무시한 채 불도저식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규직 전환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다보니 서울시 조직이 방만해지고 조직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상시적으로 계속 사람을 쓰지 않는 파트타임 직종도 많은데 그 사람들까지 무조건 정규직 전환시키고 있다"며 "미술품 전시관 안에 있는 안전 도우미들이나 미술품 안내하는 분들은 전시할 때만 일하는데 그분들도 공무직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무직으로 전환되면 전시가 없을 때는 그냥 놀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대의명분에는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존 직원들과의 융화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기존 구성원의 상대적 박탈감을 고려하지 않다보니 정규직화가 조직 내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 내 정규직 전환을 위해 7급보라는 직위가 신설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정규직 전환자들을 7급보라는 임시 직위에 올리는 바람에 7급 전환시험이라는 위인설관식 절차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기존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울러 서울시 공무직 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공무원과 공무직간 갈등이 표면화 됐었다. 서울시와 시의회가 공무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서울시 공무원과 접점이 형성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개월간 공무원과 공무직이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현재 서울시 일부 공무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인한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정치적인 의도에서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시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 의무 때문에 정당에 가입할 수 없어 도움이 안 되지만 공무직은 (중립 의무가 없어서)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며 "정치인 입장에서는 공무원들에게는 힘을 실어줘 봤자 도움이 안 되니 공무직을 이용해서 정치세력을 확대하려 하는 것이다. 명백한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바람직한 정책이 결국 내부 갈등으로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직접 다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정규직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이제는 중앙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개선하는 등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공사와 공단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면 그 효과가 민간기업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방향성을 갖고 이 정책을 시작했다"며 "그동안 일부 성과는 있었지만 입법을 통한 법령 개정은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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