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통증의학과~신경외과 협진시스템 구축
진단부터 치료까지 원스톱 관리
양극화되지 않은 다양한 치료 옵션 제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현호·신동아·김신형·박상준 교수팀은 국내에서 이례적으로 통증 다학제 진료를 시작해 4년째 이어오고 있다. 다학제 진료란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여러 진료과목 의사들이 모여 진료하는 협진시스템을 말한다.
이 팀은 각 마취통증의학과와 신경외과란 틀을 넘어 통증 진단에서부터 치료와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문 통증 환자 맞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체계적인 협진으로 환자의 통증 치료에 실질적인 성과를 이루고 있는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인 모르게 오래 ‘만성통증’… 의료인 혼자 판단 어려워
통증은 기간에 따라 급성통증과 만성통증으로, 원인에 따라 침해성 통증 및 신경병성 통증 등으로 나뉜다. 수술이나 사고 등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 급성통증이라면, 3개월 정도 오래 지속하는 통증을 만성통증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팔이 저리거나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파 잠을 이룰 수 없는 등 만성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한통증학회는 성인 10명 중 1명이 만성통증을 앓고 있다고 추산한다.
마취통증의학과 박상준 교수는 “이 통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만성통증을 경험한다고 본다”며 “한국인 특성상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심리적 요인으로 생각해 오랫동안 참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시달리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만성통증은 원인이 불명확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진단하기 어렵다. 환자 상태에 따른 개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한 이유다.
신경외과 정현호 교수는 “특히 환자가 표현하는 정도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제로 신경병성 통증을 보이는 환자라 해도 환자의 표현 정도에 따라 그 경중이 달라진다”며 “의료인 한 명이 혼자 판단하기보다 여럿이 공통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료과 경계 넘어 통합 진단… 빠르고 다양한 대안 제시
각 진료과의 경계선을 넘어 통합적 접근을 강화하고자 지난 2015년 9월 ‘통증의 달’에 탄생한 게 세브란스병원 통증 다학제 협진팀 ‘SPC(Severance Pain Community)’다.
통증 진단부터 치료 및 사후관리까지 전문적인 통증환자 맞춤 시스템을 구축했다.
정 교수는 “통증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관련 치료 및 시술·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진이 모여 협진팀을 만들었다”며 “신경외과 담당인 저와 신동아 교수, 마취통증의학과의 김신형·박상준 교수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통증의 예방법은 없어도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조기 발견을 통해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만성통증은 통증이 나타났을 때 적극적으로 빨리 진단·치료받으면 충분히 경감될 수 있다. 특히 통증에 민감한 우울증 환자 등 정신적으로 약한 환자는 자칫 만성통증 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PC팀을 찾는 환자 중에는 가벼운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병원이나 1차 의료기관에서 충분한 결과를 보지 못한 환자도 있다. 특히 척추수술 후 통증증후군(FBSS)을 갖고 있거나 3~4회 허리 수술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대학병원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척추신경자극술, 펌프시술을 받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이 때 다학제 협진팀의 장점은 의료진 간 빠른 의사소통과 이에 따른 빠른 환자 맞춤형 대안 제시에 있다. 국내 다양한 통증환자 자료를 수집·분석하면서 좀 더 명확한 진단·치료가 가능해졌다.
신경외과 신동아 교수는 “과거에는 환자가 통증으로 입원하면 담당 진료과를 선택한 후 하나의 진료과에서 끝까지 치료 받아야 했다”며 “협진 시스템 구축 후 4명의 전문의가 교류하며 통합 진단할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의료진 간 소통이 매우 원활해 환자가 내원하면 당일 바로 진행되는 수준”이라며 “잦은 내원은 환자에게도 부담스러우므로 가급적 당일 진단 및 대안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특히 협진팀은 척추수술 후 지속적으로 통증이 있는 ‘척추수술 후 통증증후군(FBSS)’과 사회적으로도 이슈인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 주로 난치성 질환을 함께 진료한다.
마취통증의학과 김신형 교수는 “통증 치료방법은 주요 약물치료와 주사 치료, 국소 절개 등을 통한 침습적 시술이 있지만,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가 많아 협진이 효과적”이라며 “환자가 특정 과에서만 진료 받으면 다른 치료 옵션에 대한 인지도가 낮을 수 있는데 SPC팀은 환자의 증상에 대한 다양한 옵션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몇몇 클리닉에선 치료 옵션이 주사 아니면 수술적 치료로 양극화돼 있다”며 “SPC팀은 주사와 수술 치료 사이에 존재하는 옵션을 제안할 수 있다. 내시경, 신경성형술, 유착박리술 등 중간 단계의 침습적인 중재 시술이 가능하다. 포트폴리오가 넓어 환자 상태에 맞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SPC 찾은 수백명 환자, 삶의 질 향상
한 사례로, 불의의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절단한 50대 남성 환자가 다리 환지통을 호소하며 마취통증의학과에 내원한 적이 있다. 약물 및 신경차단술에 치료 반응을 보이지 않고 통증이 점점 심해져 신경외과와 협진을 시작했고, 그 환자는 척수 후근 진입부 절개술(DREZotomy)을 받은 후 통증이 크게 경감됐다.
또 타병원에서 마취통증의학과 진료만 받다가 더는 치료 방법이 없어 SPC 팀으로 온 후 옵션을 찾게 된 환자, 척추 수술 후 여러 번 통증 치료에도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으나 협진 통한 척수자극기(SCC) 삽입 후 호전된 환자 등의 사례가 있다.
신 교수는 “협진 시스템 시작 후 현재까지 수백명 환자가 새로운 통증 치료 포트폴리오를 통해 삶의 질 향상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향후 더욱 많은 진료과와의 협업은 치료 효과와 환자 만족도를 배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협진 시스템은 환자와 의료진의 치료 만족도를 모두 높인다”며 “향후에는 정신과와 재활의학과 의료진과의 협업도 고려해야 한다. 만성통증 환자 중엔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처럼 협업 진료센터 운영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songy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