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할수 없는 난제들' 시리즈 1990년대 스타작가
서울대 선배 김복기 기획, 미발표 대표작 40점 전시
그녀와 동문수학한 서울대 서양화과 선배인 화가 오병욱은"그녀의 작품세계는 자신의 삶과 예술을 한데 녹여 넣을 수 있는 어린 시절 그림일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어붙이는 작업, 그녀도 자신의 작업실을 '편집적 수집광의 작을 밀실'로 묘사했었다.
"그 작업실엔 400여점의 작품이 들어차있었다"
대학 선배인 김복기(경기대 교수)아트인컬처 대표가 그녀의 뜨거운 예술혼을 다시 불러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 유족과 함께 작품 과 아카이브를 꾸준히 정리해 왔다.
40대 안타까운 절필, 50대초 병마로 생을 마감한 화가 신경희(1964~2017)씨다.
1990년대 스타작가였다. '화해할수 없는 난제들' 시리즈로 주목 받았다. 1988년 서울대 서양화과, 1990년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교 타일러 스쿨 오브 아트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재학 시절부터 동아미술제와 한국현대판화공모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판화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에서 귀국한 1993년 대림화랑에서 회화, 설치, 판화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1994년 화랑미술제에 참가해, 한 일간지가 선정한 ‘차세대 베스트 10’에 선정됐고, 그 해 가을 39세 이하 작가에게 수여하는 공산미술제 대상을 수상했다. 왕성한 작품 활동은 1997년 35세 이하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석남미술상 수상의 영예로 이어져, 박여숙화랑에서 수상 기념전을 열었다. 1999년에는 미국의 모교 템플대학교가 매년 선정하는 ‘가장 성공한 졸업생’에 올랐다. 1997년 한국/호주 문화교류 아시아링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환기미술관과 호주 컨템포러리 포토그래피 센터의 교류전에 한국대표로 참여해 멜버른에서 개인전도 열었다.
하지만 40대 초반, 2006년 불행이 찾아왔다. "지난 겨울 결국 건강에 이상이 왔다. 척추 이상으로 오른쪽 다리와 손이 저리고 힘이 없어졌다."
2007년 2월에 쓴 노트엔 이렇게 적혀있다. "지난 겨울 나는 종종 울면서 걸었다. 그 겨울의 들판은 분명 나를 기억해 줄 것이다. 견디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그런 나를."
2007 미국 펜실베니아 랑만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끝으로 활동이 멈췄다. 병마와 투병하며 10년 후인 2017년 7월 2일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 겨울의 들판은 분명 나를 기억해줄 것'이라고 했던 그녀의 바람이 선배와 제자들에게 전해졌을까.
선배 김복기 대표가 기획한 유작전이 마련됐다. 21일 서울 삼청로 학고재에서 '신경희 1964-2017 Memory – 땅따먹기'전이 개막했다.
작고 2주기를 추모하는 전시를 위해 우정우 학고재 갤러리 디렉터는 불을 밝혔다. 유작전이지만 무거움을 벗고 환하게 초대했다. 생존 작가 전시와 달리 작품마다 3~4개의 조명을 더 달았다.
작가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1990년대 작업과 2003년 이후의 미발표 유작, 40여점을 선보인다.
동시대 현대미술은 '인맥의 힘'이 만든다. 화랑, 평론가에 이어 컬렉터와 매체가 탄생시킨다.
묻힐뻔한 '90년대 스타작가'의 부활은 '선배 평론가'들의 기억이 끌어냈다. 심상용 평론가(서울대 교수)는 "신경희가 남긴 회화와 판화 작품들은 작가로서 그에게 소여되었던 재능을 입증하기엔 충분한 만큼"이라며 "신경희는 일기를 쓰듯 그렸다"고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는 "이번 유작전을 통해 신경희 특유의 '기억의 건축학'이 동시대의 조형언어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사진과 판화를 적극 활용하는 복제의 담론, 상반된 조형요소를 한 화면에 배치시키는 다중구조 혹은 탈구축의 담론, 여성주의 미술담론등이 신경희 작품 비평의 쟁점으로 떠오른다"고 기록했다.
학고재에 전시된 신경희 작품은 치열하다. '집착증'이 보이는 그림들은 감각의 촉수를 일깨운다. 바느질과 도트무늬...'자연스럽게 촉감을 유발하는 은근한 재질감이 있다.' 점점점 찍고, 한땀 한땀 떠 만든 작품은 '살아있음의 환희'다. 좋은 작품, 좋은 작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작품이 증명한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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