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낙태·부부강간·여성의 자기결정권, 연극 '콘센트-동의'

기사등록 2019/06/20 06:01:00

영국 작가 니나 레인 신작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초연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영역과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은 때론 혼선을 빚는다. 양쪽이 전체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저마다 방점을 찍은 부분과 밑줄을 긋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콘센트-동의'는 낙태와 부부강간을 통해 언급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으로 이 문제를 톺아본다.

영국 중상류층 부부인 '키티'와 '에드워드'는 막 아이를 출산했다. 겉으로는 평화롭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다. 하지만 변호사인 에드워드의 활약으로 재판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패소하는 사건이 이들 삶에 균열을 낸다. 그 틈으로 과거 에드워드의 외도에 대한 키티의 트라우마까지 파고들어오면서 부부의 삶은 갈라진다.

말다툼 도중 에드워드는 키티와 성관계를 맺는데, 키티는 이를 '부부강간'으로 규정한다. 둘째를 갖고 싶었던 에드워드는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낙태를 한 키티를 힐난한다. 키티는 내 몸이니 내가 결정한다며 맞선다.

대체로 공감과 동의는 공범이다. 당시 상황에 공감하지 못했으면 동의를 하지 않은 것이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면 공감은 불가능하다. 공감과 동의도 양해가 되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 극작가 겸 연출가 니나 레인(44)의 신작으로 이번이 국내 초연이다. 한국 관객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연출 박정희)으로 알려진 '트라이브'(Tribes)로 올리비에 어워드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한 레인은 일상에 내재된 폭력의 기원을 지적이고 냉소적인 필체로 실감나게 그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그러면서 인간의 존재를 삶의 시스템에 부닥치게 만든다.

극 속에서 누구에게도 보호 받지 못한 성폭력 피해자는 과거에도 이미 성폭력 피해자였으며,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택한다. 이를 통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 믿는 사법제도의 허점도 드러낸다.
키티는 피해자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팀'과 바람을 피울 때, 자신의 친구로 팀과 막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자라'의 상황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항상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기에 세상은 만만치 않고, 그렇게 사활을 걸만큼 삶에 여유도 없다. 상대방을 특정 방에 처넣고 본인은 밖에서 문을 잠그게 된다.

'콘셉트-동의'를 보는 내내 어둡고 내밀한 고립감이 엄습한다. 이렇게 세상에 표류하다 보면 그리스 비극 '메디아'에 닿아 있다. 남성주의와 가부장적인 질서가 만연한 그동안 마녀로 치부됐고 끝내 지난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 모던한 붉은 빛 무대 뒤에 배경처럼 놓였던, 파괴된 그리스 신전의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인터미션 15분포함 3시간10분짜리 연극이지만, 인천시립극단의 강량원 예술감독의 뚝심으로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강 연출과 오랜 호흡을 맞춰온 배우 김석주와 신소영이 에드워드와 키티 역을 맡았는데, 이들은 연극과 강 연출이 의도한 뉘앙스를 맞춤옷처럼 소화한다.

연극이 끝난 뒤 객석을 나서면 세상의 모든 공감과 동의에 공백이 있어 보인다. 그것을 채우기 위한 치열한 문장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7월7일까지 명동예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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